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황금알 낳는 기초과학


"과학자들은 왜 돈도 안 되는 쓸데없는 연구를 하느냐."

과학계에 몸담은 후 지난 수십 년간 받은 질문이다. 정치인도, 기업인도, 주부도 똑같이 묻는다. 응용과학이나 공학은 목표와 결과물이 비교적 명확해 설명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기초과학은 설득이 쉽지 않다. 과학자들도 자신이 하는 연구로 무엇을 밝혀낼 수 있을지, 미래에 어떤 기술이 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미국 일리노이 찰스턴대 연구진은 자신들의 실험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동영상은 곧바로 큰 화제가 됐다. 새우가 물속에 설치된 초소형 트레드밀 위에서 뛰는 실험이었기 때문이다. 산소 공급량에 따른 새우의 상태와 음악에 따른 새우의 운동능력 차이를 알기 위한 실험이었다.


미국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반발했다. 새우용 트레드밀을 만드는 데 들어간 정부예산이 무려 50만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예산낭비'라며 기초과학자들의 연구를 규제하기 위한 법안을 앞다퉈 발의했다. 그러자 과학계와 과학계 출신 정치인들이 반박했다. 연방정부 예산이 투입된 '개의 소변에 대한 연구' '기니피그의 고막에 대한 연구' '아메리카파리 유충의 성생활' 연구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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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소변 연구는 쓸모없는 연구의 대명사로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이 연구를 통해 사람의 신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영향을 이해하게 됐고 당뇨병 환자의 치료에 사용됐다. 기니피그의 고막 연구는 유아에게서 발생하는 초기 청각 상실의 치료법을 찾는 실마리가 됐다. 성적으로 흥분한 아메리카파리 유충 연구에서는 소에게 치명적인 기생충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법을 찾았다. 연구에 투입된 예산은 25만달러였지만 낙농산업의 이익은 200억달러 이상으로 평가됐다. 25만달러짜리 연구가 1,000개 실패하더라도 하나만 성공하면 그 이상의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제약회사들의 신약개발 연구는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모든 아이디어를 지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단순한 예산낭비'와 '과학의 획기적인 돌파구'로 표현되는 양극단을 사전에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전 세계 정부의 공통된 고민거리이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소게임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예산이 연간 17조원을 넘어 더 이상 증액하기도 힘든 한계치에 근접해가고 있다. 될성부른 떡잎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고 연구의 효율성도 높여야 하지만 쉽지 않은 숙제다.

필자는 '아무 쓸모없는 연구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패가 곧 끝을 의미하는 다른 분야와 달리 과학의 세계에서는 실패조차도 뭔가를 얻기 위한 과정의 일부다. 오히려 성공이 보장된 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혈관질환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실패 판정된 비아그라가 발기부전 치료제로 전 세계를 평정했다. 효능 없는 고혈압 치료제로 사장될 위기였던 미녹시딜은 탈모증 치료제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고 황당해 보여도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항상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품에 안고 싶은가. 그렇다면 기초과학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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