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사회봉사명령은 부적절"
대법원 "적법한 형 다시 정하라" 원심 파기
김능현 기자 nhkimchn@sed.co.kr
거액의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사회봉사명령'은 부적절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항소심은 정 회장에 대해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내리면서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전제로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같은 양형이 부적절하다며 적절한 형을 다시 정하라고 이례적으로 판결함에 따라 정 회장에 대한 양형 재선고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11일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6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정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우선 정 회장에게 사회공헌기금 8,400억원을 출연하도록 하면서 사회봉사명령을 내린 데 대해 "현행 형법상 사회봉사는 근로활동을 의미해 금원(돈) 출연을 명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집행유예 부분과 사회봉사명령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 사회봉사명령을 파기하면 집행유예 부분까지 함께 파기된다"며 "파기환송을 받은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한 적법하고 적절한 형을 다시 정하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정 회장에 대한 판결을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4개 자동차 바퀴 중 한 개가 펑크 나면 모두 교체해야 하듯이 실형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열흘 정도 뒤에 서울고법으로 환송되며 새로운 재판부가 한두 차례 속행공판을 연 뒤 선고를 하고 피고인이나 검찰이 불복하면 다시 상고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이 정 회장에게 부과된 사회봉사명령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양형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양형 재선고는 사건을 배당받은 항소심 재판부에 달렸다.
정 회장은 지난 2000~2006년 1,000억여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이중 696억원을 유용하고 부실 계열사의 유상증자에 현대차 및 다른 계열사를 참여시켜 2,100억원대의 손실을 입힌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징역 3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정 회장이 고령인데다 사회공헌활동 등을 감안해 사회기금 출연 등의 사회봉사명령을 전제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법원이 추징도 벌금도 아닌 법에 없는 '변종' 판결을 내렸다"며 대법원에 즉각 상고했다.
대법원은 이날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돈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에게 뇌물공여가 아닌 특가법상 증재혐의를 적용한 원심도 파기 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