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사건처리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제가 대법관이 된 것은 다양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영해달라는 시대적 소명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25일 임명장을 받고 6년 임기의 첫 발을 내디딘 김영란(48) 대법관은 “남성적 감수성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감수성이 소수의 감수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취임소감을 밝혔다.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첫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김 대법관은 “즐겁고 영광스럽다는 말보다는 책임이 무겁고 두렵다는 말이 앞선다”며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까마득한 선배 대법관들과 함께 판결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하겠다”며 소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호주제와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김 대법관은 “호주제는 폐지가 옳고 다수 의견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며 분명한 입장을 보인 반면 “국보법 폐지문제는 정치권에서 선택해주면 된다”며 즉답을 피했다.
최근 사법부가 시민단체 등 외부 입김에 흔들린다는 지적과 관련, 김 대법관은 “외부 입김을 의식해서 판결한다면 판사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뜻 아닌가”고 반문하고 “법원이 흔들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또 그녀는 “법원이 생각하는 개혁과 법률소비자가 요구하는 개혁이 동떨어지면 개혁의 효과도 피부에 와닿지 못한다”며 “법률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들의 접근과 참여를 확대할 방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사법부 개혁의 방향을 설명했다.
과거 대법원 연구관 경험을 회상하며 김 대법관은 “예전에 대법관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개인적 시간이 부족하고 사건도 혼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만큼 외로운 자리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또 그녀는 “고교동창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최근에 만날 기회가 있었다”며 “자기가 장관에서 물러나고 제가 대법관으로 들어오니 참 좋다고 말했다”고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 대법관은 사시 20회에 합격,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대법원 연구관, 수원지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부장판사, 대전고법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지낸 강지원(54ㆍ사시18회) 변호사가 남편이며 김문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