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엔고와 환율정책/박동순 한은 외화자금실 과장(기고)

◎인위적 원절하 보다 「고비용」 해소 주력을일반적으로 경제가 얼마만큼 견실하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 통화의 대외가치 척도인 환율이 상승하기도 하고 하락하기도 한다. 즉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경제가 견실하게 성장하여 그 결과 경상수지가 흑자를 보이면 환율은 하락(절상)하며 반대로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이면 환율은 상승(절하)하게 된다. 따라서 환율은 국제수지와 마찬가지로 그 나라 경제활동 결과의 또다른 대외성적표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높은 경제성장률에 힘입어 1인당 국민소득이 꾸준히 증가하는 등 경제규모가 계속 증가해 왔으나 한편으로는 물가상승률이 상당히 높은데다 90년대 들어서는 자본자유화 및 여행자유화 등 제반 자유화의 빠른 진전에 따른 소비수요 급증으로 경상수지가 악화됨으로써 원화가치는 전반적으로 하락추세를 보여왔다. 이와 같이 환율은 경제성장률, 물가수준, 경상수지 등 일국의 기초 경제여건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는 한편 역으로 환율이 경상수지 등 경제의 기초변수를 조정하는 정책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경상수지 적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국통화가치를 하락시키는 환율정책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는 단기적인 처방에 불과하며 보다 근본적인 경상수지 적자문제 해결방법은 긴축재정 등 총수요 관리정책과 구조조정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국통화 가치를 하락시키는 환율정책이 경상수지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는 자국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단기적으로는 수출이 증가하고 수입이 감소하여 경상수지가 개선되나 장기적으로는 수입가격 상승을 통한 소비자물가 상승이 임금상승을 유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켜 단기적인 경상수지 개선효과가 거의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경상수지가 적자기조에서 흑자기조로 전환된 국가의 대부분이 자국통화 가치의 하락정책을 추구하기 보다는 물가안정 등을 통한 경제체질 강화에 힘써온 사실로도 잘 증명된다. 그러나 환율정책이 경상수지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해서 정책당국이 환율움직임에 수수방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90년대 들어 자본자유화의 진전 및 금융기법 발달에 따른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의 등장으로 과거에 비해 자본이동비용이 저렴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국가간 자본이동규모 및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환율은 경상수지보다는 자본수지에 의해 좌우되는 현상이 종종 발생하고 있으며 그만큼 환율이 경상수지 등 기초적 경제여건을 반영한 적정수준으로부터 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외환정책당국의 환율동향 점검필요성은 오히려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내외 균형을 만족시키는 적정환율수준을 알아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 선진국은 적정환율수준을 내부적으로만 추산하여 환율정책운용에 참고는 하고 있지만 이에 전적으로 의존해 환율정책을 수행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며 다만 환율이 단기간내에 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 즉 외환시장에서의 환율움직임을 대체로 수용하되 그 속도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환율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90년대 시장평균환율제도 실시이후 환율이 가급적 시장기능에 따라 움직이도록 환율정책을 수행해왔다. 즉 엔화가 미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일 경우 원화도 미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는 등 원·달러환율은 시장의 자율적 기능에 의해 움직여왔다. 한편 최근 엔화가 미달러화에 대해 강세로 돌아섰으나 원·달러환율은 대체로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제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자동차, 선박 등을 중심으로 수출을 증가시켜 일시적인 경상수지 개선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화가치의 인위적인 하락은 수출기업으로 하여금 가격경쟁력에만 의존하게 함으로써 품질향상과 생산성향상 노력을 게을리하게 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 결과 고비용저효율 구조의 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 되돌아보면 우리나라는 과거 몇번의 구조조정 기회를 놓친 결과 90년대 들어 경상수지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구조조정이 지연될수록 기회비용이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기침체기인 현 시점이 구조조정을 위한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요약컨대 환율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여러모로 고려할 때 경상수지개선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최근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엔화강세 활용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소위 우리 경제의 고비용저효율구조 개선을 통한 구조조정으로 기업, 나아가 경제전체의 체질을 강화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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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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