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연합(EU)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자원을 무기로 한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주변 동유럽 국가들의 노력이 새삼 조명받고 있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조금이라도 낮춰 러시아에 휘둘리는 상황을 벗어나려 하지만 가까운 에너지원을 두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것이 얼마나 실질적 효용성을 가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주 현대중공업은 리투아니아에서 발주한 세계 최초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재기화 플랜트(LNG-FSRU·해상 LNG 플랜트) 건조에 성공했다. 리투아니아는 이 플랜트를 올해 말부터 가동해 LNG 공급경로를 다변화할 계획이다. FT는 "'독립(independence)'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 플랜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며 "어떤 전함보다 효과적으로 러시아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해 90억m³ 규모의 가스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폴란드도 10억유로(약 1조4,777억원)를 들여 올해 안으로 발트해 지역에 LNG 저장설비를 완공할 예정이다. 폴란드 정부는 이 플랜트를 이용해 중동 등지에서 최대 연 75억m³의 LNG를 수입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핀란드·에스토니아 등 다른 인접국들도 LNG 플랜트 건설계획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셰일혁명이 한창인 미국이 LNG 수출을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들에는 절호의 기회다. 여기에 동아프리카·중동·호주 등의 수출 증가세까지 감안하면 오는 2018년 전세계 LNG 공급량은 지금의 2배 수준인 연간 약 8,276억㎥에 다다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계산이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도 리투아니아에 4억4,800만유로, 폴란드에 8,000만유로를 제공하는 등 동유럽 국가 LNG 프로젝트 지원에 나섰다.
동유럽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LNG 수입을 늘리는 것은 러시아 자원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EU 전체 LNG 수입량의 23%를 점유하는 러시아는 중요한 때마다 에너지 가격을 흥정 카드로 활용하며 유럽 약소국들을 압박해왔다.
영국·독일 등 수입선을 다변화할 수 있는 서유럽 국가와 달리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는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벨로루시 일대에 깔린 가스관을 통해 공급되는 러시아산 LNG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울며 겨자먹기로 가스프롬 등 러시아 기업들이 강요하는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조사기관인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는 "지난해 기준 영국이 가스 수입량 1,000m³당 300달러를 냈다면 독일은 370달러가량 소요됐으며 동유럽 국가는 500달러 이상 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러시아는 정치적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가스 공급을 중단해 동유럽 국가를 궁지로 내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2004년) 이후에도 세 차례나 가스 공급을 끊은 바 있다. 지난 2009년 1월에도 가스 공급이 멈추면서 유럽 중동부 18개 국가가 막대한 피해를 당했다.
그러나 이의 방어책으로 LNG 수입을 늘리는 게 오히려 더 큰 손해가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토마사츠 카소비츠 폴란드 자호드니은행 분석가는 "가까운 가스관에서 공급되는 가스 대신 먼 곳에서 LNG를 끌어오겠다는 발상 자체가 경제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폴란드는 카타르산 LNG 1,000m³당 러시아산 가스보다 50% 비싼 600달러를 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LNG 공급량이 증가하더라도 중국의 소비가 늘어나면 장기적 가격하락을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중국의 LNG 수입량은 265만㎥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7% 급증했다. 이에 러시아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LNG 수입확대보다 유럽 내 셰일가스 개발을 촉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셰일 개발에 소극적인 EU가 시각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FT는 "영국과 동유럽 국가는 셰일가스 관련 규제를 풀기위해 EU에 대한 로비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