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구제역·산불 딛고 귀중한 한표 행사

주민·공무원 교대로 투표 산불진화 안간힘21세기를 이끌어갈 국민대표를 뽑는 16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전국 1만7,380개 투표소에는 신성한 권리를 행사하려는 유권자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탈북자들이 처음 투표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으며 구제역과 산불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역주민들도 권리를 행사했다. 오전6시 투표가 시작되자마자 많은 유권자들은 일찍 투표를 마치고 가족들과 상춘(賞春)에 나섰다. 이에 따라 전국 유명산과 유원지, 수도권 부근 골프장은 만원을 이뤘다. 그러나 산불피해가 심한 강원도 지역주민들과 공무원들은 교대로 투표를 하며 사고수습에 안간힘을 쏟아 대조를 이뤘다. 전날밤까지 16일간의 법정 선거운동기간이 끝나서인지 대부분의 투표장 주변은 조용했으며 그동안 지역구를 누비며 표밭을 다지던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지구당 사무실 등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기다렸다. ○…대형 산불이 잇따라 발생한 강원도 고성군의 토성면 운봉리, 죽왕면 삼포리와 거진읍 거진1~6리에서도 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들 지역 읍·면사무소는 예기치 못한 산불로 신분증을 잃은 주민들에게 주민등록증을 신속히 재발급했고 관할 선관위도 산불 이재민에 한해 읍·면사무소에 보관돼 있는 주민등록 원본으로 신분확인이 가능하도록 조치, 일부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는 했으나 큰 문제 없이 투표가 이뤄졌다. ○…구제역(口蹄疫) 발생으로 이동이 제한된 파주·화성·용인 등 경기도 내 3개 지역에서는 투표를 위해 마을 밖으로 빠져나오는 주민들에게 일일이 소독을 실시했다. 파주시 파평면 금파1리 아랫샘마을 전체 유권자 150명 가운데 30여명은 이날 오전9시를 전후해 마을 진입로에 뿌려놓은 생석회를 신발에 고루 묻히는 소독을 한 뒤 마을 밖으로 나와 투표소가 마련된 파평면사무소로 향했다. 화성군 비봉면 쌍학1리(유권자 240명) 주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마을 입구에서 소독을 한 뒤 좌석버스를 이용, 2.5㎞ 떨어진 비봉종고 투표소로 이동해 신성한 주권을 행사했다. ○…일본 야쿠자를 살해한 죄로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지난해 석방된 권희로(權禧老·72)씨가 오전10시30분 부산 연제구 거제1동 거학초등학교에서 생애 처음 고국에서 주권을 행사했다. 투표를 마친 권씨는 『이렇게 투표까지 하고 보니 이제 진짜 한국인이 된 것 같아 감격스럽다』고 기뻐했다. 지난 98년 4월 북한을 탈출한 양순용(74·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71)씨도 수동면 제1투표소에서 귀순 이후 처음으로 참정권을 행사했다. 양씨는 지난 98년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는 호적이 없어 참여하지 못했으나 지난해 호적이 부활돼 이번 총선에는 권리를 행사하게 됐다. 이밖에 경기도 안산시 사1동 고향마을 아파트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영구 귀국 사할린 동포들이 13일 사1동 성안초등학교에 마련된 제4투표소에서 귀중한 한 표를 처음으로 행사했다. ○…지난 11일 모친상을 당한 조남각(70·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씨 8남매 등 일가족 30명은 13일 오전6시 각자 주소지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이날 오전9시 발인했다. 4대가 함께 대가족을 이루며 단란하게 살아왔던 조씨 가족들은 『가족회의에서 국민의 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하자는 의견이 나와 발인을 늦추고 투표했다』고 말했다. ○…노환으로 몸이 불편한 80대 할머니가 신성한 주권행사를 위해 투표장을 찾았다가 숨져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경북 칠곡군 북삼면 보손리에 사는 김향이(85) 할머니는 13일 오전8시30분께 북삼면 숭산초등학교에 마련된 칠곡군 북삼면 제1투표소에 손자 차모(34)씨와 함께 투표를 위해 도착했다. 김할머니는 투표소 계단을 오른 뒤 참관인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 중 갑자기쓰러져 인근 혜원성모병원으로 옮겼으나 곧 숨졌다. ○…뇌졸중 환자와 소아마비 장애인이 혼자 목발을 짚고 수시간동안 걸어서 투표장에 나타나 투표 관계자들과 참관인들의 박수를 받았다. 수년전부터 뇌졸중을 앓고 있는 울산 울주군 천상리 김법균(30)씨는 이날 오전7시 집에서 나와 500㎙ 떨어진 범서면 제7투표소 범서초등학교에 10시에 도착해 주권을 행사했다. 한 발을 내딛는 데 걸린 시간이 2~3분인 셈.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인 울산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의 김만택(67)씨도 산속 자택에서 삼남면 제4투표소 중남초등학교까지 1㎞ 이상 목발로 걸어나와 투표를 하는 집념을 보였다. ○…3개월간의 「낙선운동」을 마감한 총선연대는 이날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무실에 낙선대상자 86명의 이름·지역구·개표결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상황판」을 설치해 유권자의 선택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특히 서울 종로·강동을 등 전국 22곳의 중점 낙선운동 지역구 칸은 「빨간색」으로 표시, 낙선목표를 달성하려는 총선연대의 의지를 엿보게 했다. 윤종열기자YJYUN@SED.CO.KR 오철수기자CSOH@SED.CO.KR 입력시간 2000/04/1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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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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