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에너지, 황금비율 찾아라] <1> 균형 갖춘 발전원 비전 시급

원전의존 한계… 석탄·가스 포함 '에너지믹스 전략' 수립해야<br>특정 전력원 쏠리면 위기 상황때 대처 힘들어<br>석탄 '경제성' 가스 '수용성' 살려 적절히 조합<br>정치논리 아닌 시장 수요에 맞춘 정책 필요

경북 울진 한울원전본부에 원자력발전소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올 하반기 정부가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원전의 목표비중(2030년 기준 59%)을 어떻게 조절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서울경제DB


원자력 발전은 땅에서 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로 만드는 에너지로 불린다. 석유나 가스 발전처럼 원료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술력이 핵심이다. 에너지 초빈국인 한국이 원전에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일쇼크와 급변하는 자원 가격에 지칠 대로 지친 정부는 원전을 통해 '에너지 독립'을 꿈꿨다.

정부는 지난 2008년 건국 이래 최초로 수립된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전 비중을 59%(발전량, 2030년 기준)까지 높였다. 사실상 세계 최대 원자력 국가인 프랑스(원전 비중 75%)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장밋빛 청사진은 채 5년을 버티지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계속되는 국내 원전비리로 원전의 신뢰성이 상실됐고 원전은 물론 송전망까지 모든 설비에 대한 수용성이 악화됐다. 에너지믹스의 균형점을 재설계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일각에서는 탈원전 같은 급진적인 주장도 나오지만 어느 쪽이든 한 방향으로 쏠리는 에너지 정책은 대안이라고 볼 수 없다.

◇원전 여전히 효율적이나…쏠림은 불가능한 현실=하반기 수립될 2차 국기본은 중장기적으로 원전의 비중을 1차 국기본보다 얼마나 줄이느냐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는 물론 정부나 전문가그룹도 1차 국기본보다는 원전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원전의 수용성이 악화된데다 대형 발전원이 고장 났을 때 전력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 심각하다는 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원전 비율 소폭 증대(발전량 30~40%) ▲현행수준 유지(30%) ▲탈원전(10~20% 축소 후 폐지) 등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산업통상자부 관계자는 "1차 국기본 때보다는 사회적 수용성을 대폭 고려한 새로운 믹스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발전원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할 경우 위기상황에서 대처하기 어렵다. 일본이 후쿠시마 사태로 원전가동을 전면 중단하면서도 전력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원전의 발전량 비중이 30%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에너지 전문가들은 에너지 안보와 대내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기저 발전원으로서 원전의 비중을 현행 수준(30%) 또는 소폭 증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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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가스 적절한 믹스 찾아 발전원 분산=사실상 60%를 목표로 삼았던 원전의 비중을 줄일 경우 어떤 발전원으로 이를 대체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환경단체 등이 주장하는 신재생에너지 전환은 전기요금 혁신과 괄목할 만한 기술개발이 있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미래 에너지가 발굴되기 전까지는 어찌됐든 브리지가 필요하다.

국내 발전원의 3대 축은 원자력ㆍ석탄ㆍ가스 발전이다. 원자력을 줄일 경우 석탄이나 가스발전소를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석탄과 가스 발전 각각의 장단점이 매우 뚜렷해 한쪽을 전향적으로 선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석탄은 발전단가가 원자력 다음으로 저렴하지만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다. 원전처럼 대형 설비로 발전소나 송전망을 짓는 일도 만만치 않다.

반면 가스발전소는 도시 인근 분산형 발전원으로 도입하기 좋고 건설공기도 짧지만 경제성이 석탄에 비해 떨어진다. 셰일가스 개발로 가스 가격이 하락하는 추세라고는 하나 가스를 액화천연가스(LNG) 방식으로 들여올 수밖에 없는 현실상 저렴한 발전원이라고 볼 수 없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온실가스 문제만 조금 여유롭게 생각한다면 원전을 대체할 만한 발전원은 결국 석탄 발전밖에 없다"며 "원자력을 줄이는 대신 석탄과 가스 사이에서 정부가 적절한 믹스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전사업 지속을 위한 납득할 만한 비전 제시해야=현재 국내 가동 중인 원전은 총 23기다. 정부는 지난 5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오는 2024년까지 총11기의 원전을 추가로 짓기로 했다. 이 가운데 신고리 3ㆍ4호기 등 5기가 현재 건설되고 있으며 나머지 6기는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착공된다.

6차 전력수급계획에서는 2025~2027년 삼척과 영덕에 지어질 4기(600만kW) 원전 용량도 계획안에 포함시켰지만 실제 건설 여부에 대한 결정은 올해 말까지 유보하기로 했다.

여기에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의 계속운전 여부도 정부의 고민거리다. 가동 중인 국내 원전 총 23기 가운데 10기는 앞으로 20년 이내에 설계수명이 끝난다. 당장 월성 1호기가 지난해 말 설계수명이 종료된 후 아직까지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약 10년 뒤부터는 매년 1~2기씩 줄줄이 원전의 설계수명이 종료된다. 원전 신규 건설과 수명연장 사이에서도 적절한 믹스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2차 국기본에서 정부가 지속 가능한 원전을 위한 보다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논리 또는 정치논리에 편향된 에너지계획은 결국 5년 안에 다시 휴지통으로 들어간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한 에너지믹스를 짜기 위해서는 결국 전기요금 등 수요정책에 대한 비전이 함께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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