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지난 7월 자동화기계 제조업체 A사가 자사의 '구이김 자동절단 수납장치' 특허발명을 침해했다며 B사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권 침해 금지 소송에서 특허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1·2심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사는 커다란 구이김을 시중에서 판매되는 크기인 9등분으로 자르는 것과 동시에 케이스에 담을 수 있도록 한 기계를 개발해 지난 2005년 특허를 받았다. 이 기계의 개발로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도 김의 절단과 수납을 자동화할 수 있게 됐다.
자동화의 핵심은 자른 김들의 사이를 벌려 케이스에 담기 쉽게 하는 데 있었다. A사는 이를 위해 '아래로 갈수록 두꺼워지는 절단날'을 설계했다. 이 절단날을 김 아래에 놓고 위에서 압력을 가하면 김들은 잘리면서 자연스럽게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
문제는 경쟁업체인 B사가 '같은 듯 다른 듯한' 기계를 만든 데 있었다. B사는 김의 절단과 수납을 자동화하는 전체적인 구조는 같으나 절단날이 김 위에서 내려와 자를 수 있도록 했다.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은 두 회사의 제품은 사실상 동일하지만 제품의 핵심 구성요소인 절단날의 위치와 구성에서 차이가 있다며 특허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2009년 대법원은 특허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으로 '양 제품의 특징적 구성이 같거나 유사할 것'을 제시했는데 이런 기준에 충실하게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번 사안에서는 특징적 구성이라는 '부분'보다 기술사상의 핵심이라는 '큰 그림'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A사 제품 발명기술의 핵심은 '여러 겹의 김들이 하강하면서 서로 사이가 벌어지도록 유도'하는 데 있는데 이 점에서 두 회사의 제품은 과제의 해결원리가 동일하다"며 A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B사 제품에서 상부에 배치된 칼날이 아래로 이동하면서 구조와 절단 방식 등에서 차이가 생긴다 하더라도 이는 부수적인 기술변경일 뿐만 아니라 통상의 기술자라면 그 같은 구성의 변경은 생각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특허제품의 구성요소를 조금 바꿨더라도 핵심 아이디어를 베낀 사실만 확인되면 특허 침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그동안 법원은 '특징적 구성의 동일성'이라는 법리에 얽매여 특허 침해를 인정하는 데 인색한 경향이 있었다"며 "이번 판결은 '기술사상의 핵심'이라는 새로운 법리를 통해 기계적인 동일성에 얽매이지 않고 특허 침해를 유연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A사를 대리한 김철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특허 무효율이 높고 특허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금액이 낮아 특허권자의 보호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특허권 보호 강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