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北, 정경분리 원칙 준수… 南, 2단계사업 착수 서둘러야"

고일동 KDI 선임연구위원<br>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 <br>조봉현 企銀경제 硏연구위원<br>남측 대북정책 맞대응 카드… 北의도 분석땐 藥 될수도<br>PSI 참여·국제적 제재에 주도적으로 나서면 협상 역행<br>입주기업 피해 최소화위해 보험규정 수정등 대책 절실

북한이 개성공단 흔들기에 나서면서 남북관계에 또 한차례 격랑이 일고 있다. 북한은 지난 21일 개성공단 토지임대차계약과 개성공단 근로자의 임금을 현실화하자는 핑계로 사실상 남북 간 합의를 파기하는 대남(對南) 압박책을 감행했다. 북측의 요구들은 개성공단을 존폐위기로까지 내몰 수 있는 사안들이어서 우리 정부의 대응과 북측의 앞으로 태도에 따라 개성공단은 물론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진단을 통해 개성공단 남북 당국자 접촉의 의미와 남북관계 전망을 짚어보았다. ◇北, 개성공단 계약 재검토 요구 왜? ▦고일동 KDI 선임연구위원=북한이 로켓을 쏘고 우리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검토하는 마당에 개성공단 임금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이라는 대단히 실무적인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앞으로 남한과의 대화창구를 열어두고자 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내놓은 카드를 설사 우리가 전부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북한이 경제적으로 이득을 얻을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을 바라봐야 한다. 토지사용료 유예기간을 단축한다고 해서 당장 달러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임금을 올린다고 해서 당장 경제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이런 수준의 문제는 지금 시점에서 남북 모두가 당국 대화 테이블에서 원하는 비중이 아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1일 남북 당국자 간 접촉에서 북측이 통고한 개성공단 사업 전면 재검토는 6ㆍ15남북공동선언과 10ㆍ4정상선언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재검토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북측이 여기에 강력한 맞대응 카드로 내놓은 성격이 짙다. 북측의 이 같은 맞대응 의도를 잘 분석하면 오히려 이번 접촉이 우리 정부에 독이 아닌 약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봉현 기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북한의 ‘4ㆍ21조치’에 대해 다들 개성공단 폐쇄라는 큰 고비를 넘겼다며 안도하고 있지만 사실상 북측에서는 개성공단 폐쇄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다음 수순은 ▦조 연구위원=북측이 사실상 개성공단과 관련해 전면 재검토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향후 남측과 진행하는 협상에서 임금 현실화나 토지 임대료 문제 외에 더 어려운 과제들을 계속해서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는 남측 정부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개성공단을 포기하도록 유도해 책임 소재를 남측 정부에 떠넘기려는 고도의 전략ㆍ전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양 교수=앞으로 남북관계와 개성공단 문제에서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원하는 대로 이끌어가려면 남북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 남북 화해와 협상 분위기 조성이라는 흐름과 맞지 않게 우리 정부가 PSI에 전면 참여하는 선언을 성급히 한다거나 국제사회의 제재 흐름에 주도적으로 나설 경우 이 같은 남북 화해, 협상 분위기 조성에는 역행하는 것이 된다. 북측은 이 경우 남측의 진정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심을 확대하게 될 것이고 이 같은 의심이 커지면 결국 개성공단 전면 폐쇄를 고려하는 수순을 선택할 수도 있다. ▦고 연구위원=북한으로서는 이번 남북 당국자 간 접촉에서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섣불리 내놓지 않겠다는 이면을 보여줬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대부분의 대화 창구가 막히고 금강산이 폐쇄된 지 1년이 다 돼가는 마당에 개성공단은 북한이 남한과 실무적으로 대화 채널을 열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경제적 카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북한의 전형적인 논리로 볼 수 있다. ◇개성공단 억류자 문제는 어디로 ▦양 교수=이번 접촉의 예민한 문제였던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 사안의 경우 북측은 우리 정부 대표단이 대표단 접촉에서 반드시 제기할 것이라고 예측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유씨 문제를 회피해 개성공단 운영 사안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다른 문제를 꺼내면 선택과 집중에서 흐트러질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유씨 문제는 향후 남북관계 전개 흐름에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압박의 패로 남겨둔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분위기에 따라 유씨 문제는 빨리 해결될 수도, 장기화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론에 선 개성공단 ▦고 연구위원=이번 대화에서는 북한이 개성공단과 PSI를 별개로 바라보고 있다는 시각을 알 수 있다. 과거 한미 키리졸브 훈련 때도 북한은 우리의 개성공단 통행 문제를 건드렸을 뿐 공단 자체를 손대지는 못했다. 또 한편으로 북한은 이렇게 상황이 악화된 마당에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온 문제를 크게 이슈화하려는 목적도 있다. 즉, 경제적 문제라고 정치 문제의 후순위가 아니라며 상정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테이블로 꺼낸 것이다. 만약 개성공단이 폐쇄될 경우 북한이 입는 경제적 타격은 엄청나다. 근근이 조업을 이어가는 것과 단기간이라도 완전히 폐쇄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번 문을 닫으면 남북 경협 문제는 모든 부분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또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실패로 돌아갔는데 이를 두고 다른 경협을 추진한다는 것 역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불가능하다. 남북관계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양 교수=북한은 개성공단 사업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뤄낸 민족사업이라는 점에서 될 수 있으면 큰 흠집을 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에게 손상이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오히려 단호하게 정리하려 할 수도 있다. 북측이 개성공단을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일종의 맞불작전 일환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개성공단의 미래는 정부 향후 태도에 따라 유동성이 강해질 것이다. ▦조 연구위원=현재의 개성공단 사태가 정경분리 원칙을 무시한 양측 정부의 힘겨루기에서 촉발됐지만 결국 피해는 중소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형국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3월 이명박 정권의 초대 통일부 장관을 맡았던 김하중 전 장관은 ‘북핵 문제 해결 없이 개성공단 2단계 사업 착수는 없다’는 발언을 하면서 북한을 자극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전반적인 남북관계 경색을 타고 지난해 12ㆍ1조치 등 현재까지 일련의 개성공단 사태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개성공단이 문을 닫거나 3개월 이상 사업이 정지될 경우 경협보험제도를 적용 받아 최고 50억원 한도 내에서 투자금의 90%까지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정치적인 갈등으로 인해 기업체에 피해가 발생하거나 더 이상 사업체를 지속하기 어려워 스스로 개성공단 사업을 포기할 경우 제대로 보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논란을 빚을 수 있다. ◇정부의 대응은 ▦양 교수=우리 정부로서는 이번 접촉을 개성공단 사업을 포함한 포괄적 접근을 통해 남북관계 전반적 복원을 이끄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북한 요구를 단순하게 받아들여 개성공단으로 의제를 좁히는 협상을 하지 말고 협상의 급과 의제를 더 넓히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이 같은 포괄적인 접근에 북측은 초기에는 반발하겠지만 결국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이해하면 북측도 호응할 것이다. ▦고 연구위원= 북한이 새로 꺼낸 임금 및 토지사용료 카드는 사실 개성공단과 남북경협의 발전을 위해 어차피 한번은 거쳐야 할 문제였다. 가장 실질적인 문제가 가장 정치적 카드가 된 셈이다. 차제에 우리도 실무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개성공단과 관련한 우리 측 숙원 과제인 임금직불, 은행설립, 3통 문제 등을 테이블로 꺼낼 수 있다. 남북 간 물리적 충돌 가능성까지도 제기되는 마당에 이 같은 대화 수준이 맞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간 미뤄왔던 것을 이번 기회에 해소하는 차원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이 모든 논의가 개성공단의 조업이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대화는 북한이 매우 묘한 제스처를 보였다는 의미로 접근할 수 있다. ▦조 연구위원=지난해 12ㆍ1조치를 전후로 현재까지 세 차례에 걸친 통행차단 등으로 수주물량 감소 및 납기지연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최근 기은경제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 올 들어 현재까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생산액 피해 규모는 모두 2억5,142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험규정 수정 등 현실적인 대책이 절실하다고 본다. 개성공단사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남북 측 당국에 ‘정경분리 원칙 준수’와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의 조속한 착수’를 제안하고 싶다. 북측의 경우 이명박 정권 출범 이전부터 남북경협사업 지속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으며 개성공단을 통한 대남압박 전술도 개성공단 지속 여부에 대한 남측 정부의 의지를 엿보기 위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이미 남북 간 감정이 악화될 대로 악화됐지만 기업체들의 추가적인 피해 발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면 중단된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을 조속히 착수해 개성공단을 남북 교류의 창구로 활용해야 한다. ◇북핵 6자회담과 한반도는 ▦양 교수=미국은 현재 금융위기와 아프가니스탄 이슈로 한반도 문제가 주요 의제에서 밀려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의 경우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해결해나가기를 원할 것이다. 남북 대화의 진전이 이뤄지면 북미 간 북핵 협상과 6자회담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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