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800억원 규모의 화학제품을 유럽에 수출하는 합성수지 첨가제 전문업체인 S사에 비상이 걸렸다. ‘신화학물질관리(REACH)’ 규제의 첫 시작인 사전등록 절차가 내년 6월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이 업체가 유럽연합(EU) 현지인과 대리인 계약을 체결하고 컨설팅을 받아본 결과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S사가 등록해야 하는 물질은 100여개로 본등록까지 이르는 절차를 모두 밟을 경우 1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됐다. 이처럼 유럽의 환경 분야 무역규제인 ‘REACH’가 수출기업들에 현안으로 다가오고 있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삼성ㆍLG 등 대기업 화학 계열사는 수천억원의 연구개발(R&D) 투자로 얻은 고급 물질정보가 EU 시장에 노출될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18일 환경부와 산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국내기업들이 REACH ‘사전등록’ 을 위해 EU 지역의 전문컨설팅업체들과 등록 대리 계약을 속속 체결하고 있지만 예상외로 비용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 대리인 계약을 통해 화학물질 1개당 사전등록에 소요되는 비용은 400만~500만원 수준. 여기에 사전등록 후 ▦EU 내 공인시험분석기관(GLP) 시험분석 ▦본등록 등의 절차를 마무리할 경우 총 비용은 물질 1개당 2억~5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S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액 2,400억원 중 약 30%를 유럽시장이 차지하고 있다”며 “유럽시장 한 해 매출액의 무려 14%가 EU의 환경규제 대응비용으로 빠져나가게 될 판”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수년간 REACH제도를 이행하는 데 막대한 등록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지만 이처럼 구체적인 액수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스크포스(TF)를 가동, 대책 마련에 분주한 삼성 등 대기업의 경우 또다른 이유로 현지 등록 대리인을 선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정밀화학의 한 관계자는 “현지 대리인에게 우리 업체의 제품자료와 유통망 정보를 모두 제공해야 하는데 REACH 규정상 이런 데이터를 대리인 측이 10년간 보유할 수 있다”며 “이는 인기업 정보유출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국내 화학업체들이 등록에 따른 실익이 크지 않는 화학물질은 해당 공정을 다른 대체물질로 바꾸거나 아예 특정 화학물질의 유럽 수출을 아예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며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게 될 화학시장의 공백을 최근 수년간 REACH 대응기반을 구축해온 유럽계 화학업체가 고스란히 쓸어 담아 세계 화학시장을 독과점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EU 수출품목 중 화학 관련 주요 상품 수출액은 ▦고무제품 7억6,300만달러 ▦석유제품 5억9,500만달러 ▦합성수지 5억9,200만달러 ▦플라스틱 제품 3억8,600만달러 ▦정밀화학원료 2억6,400만달러 등 26억달러(약 2조5,000억원)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