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

"기업 납부능력 구체적 평가, 과징금 낮출것"<br>과징금 못내 퇴출되면 오히려 경쟁 약화시켜<br>세계2·3위 철강사 결합… 中·日과 공조 대응할것



정호열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카르텔) 과징금 감경사유 중 기업의 납부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마련해 하반기 중 과징금 고시를 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과징금 부과 목적을 고려할 때 경제위기나 경영난을 참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과징금 부과 목적은 경쟁제한적 행위를 억제해 경쟁을 촉진하는 데 있다"며 "그런데 과징금이 과다해 사업자가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존립기반이 약화되면 오히려 경쟁이 줄어들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거래 관행과 관련해 "취임 이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가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문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들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자율적인 협력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공정위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을 만나 당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이달 말이면 취임한 지 만 1년이 된다. 지난달 30일 서울 반포동의 공정위 위원장 집무실에서 정 위원장을 만나 취임 이후 성과와 향후 과제에 대해 들었다. -최근 상조업이 말썽입니다. 할부거래법이 개정돼 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데 어떤 효과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할부거래법 개정안이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인데 벌써부터 시장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최저 자본금과 선수금 보전제(납입금액의 50% 이상 별도 예치) 등의 규제가 생깁니다. 법적 요건 맞추기 위해 지금 상조업계에서는 인수합병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세사업체는 큰 업체의 지점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기본적인 룰을 만들어주니 시장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이 시행되면 행정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여 행정안전부에 인원확충을 요청한 상태입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로 꼽히지만 실은 대기업이 하청업체를 쥐어짜면서 이익을 늘린 측면이 있습니다. 공정위가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의 상생문화 전도에 힘쓰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과연 수십년간 누적된 구조가 자율적으로 개선될지 의문입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관계의 핵심 이슈는 납품단가입니다. 완성품 가격이 떨어지면 이를 완성품업체와 1ㆍ2차 협력사가 나눠 부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특히 협력업체의 거래선이 하나일 때는 대기업 측에서 손쉽게 완성품 시장 가격하락을 협력업체에 전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정위는 '납품단가 조정제'를 하도급법에 도입했습니다. 대기업은 협력업체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납품단가를 조정해달라고 요청해오면 협의에 응해야 합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약자인 협력업체들이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시행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앞으로 2~3년이 더 지나면 일반 규범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외에도 구두발주 관행을 없애기 위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계약추정제도도 도입했습니다. -담당 임직원에 대한 인사고과가 납품단가를 얼마나 싸게 해오느냐로 결정되는 마당에 제도에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직원 고과에 상생협력을 반영하도록 하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중요한 지적입니다. 대기업 총수들 사이에서는 담합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담당 임원들은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담합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는 연성 규범, 즉 소프트 로(soft law)와 관계된 것입니다. 업계의 빅브러더가 영업을 싹쓸이하지 않고 영세사업자에게 기회를 주는 영업문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공정위가 상생협력 협약식과 같은 이벤트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벤트성이 아니냐고 비판하지만 이는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이런 이벤트를 통해 기업인들의 마인드가 개선될 것으로 봅니다. 연성 규범을 창달하는 게 공정위가 노리는 대목입니다. -경제적 약자 보호와 포퓰리즘의 경계가 애매합니다. 대표적인 게 기업형슈퍼마켓(SSM) 문제인데 공정위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도ㆍ소매, 홈쇼핑, 인터넷 등과 같은 유통채널이 서로 경쟁하는 게 공정위가 바라는 이상적이 형태입니다. SSM이 특정 지역에 설립이 제한된다면 이는 분명 경쟁제한적 요인이 있습니다. 게다가 통상 문제 측면에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외국계 대형마트가 SSM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 시장은 닫으면서 외국 시장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초기에 공정위도 SSM 규제에 대해 반대의견을 냈지만 정부 전체 차원에서 조율한 의견을 따르는 입장입니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 입장에서는 경쟁제한적 법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1999년 이전에는 법정 카르텔이 많았습니다. 법으로 카르텔을 인정해주는 제도였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로 카르텔 일괄정리법을 통해 카르텔들을 싹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 둘씩 다시 경쟁제한적 법령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한번 법이 만들어지고 그 법의 보호를 받는 이익집단이 형성되면 이를 해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IMF 외환위기는 한국경제에 큰 시련을 안겨주기는 했으나 각종 규제가 철폐되고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등 시장경제와 관련해 재도약하는 기회였습니다.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한국경제가 견조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10여년 전 시장개방경제를 위한 제도개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반경쟁ㆍ대중영합제도를 억제한다면 10년 후에 그 혜택을 누리면서 현재 정책을 재평가하지 않겠습니까. -대표적으로 어떤 분야가 진입장벽을 풀어야 할 부분인가요. ▦일반의약품(OTC)이 대표적입니다. 비타민•아스피린•소화제와 같은 일반의약품도 약국에서만 팔고 있으며 일부 화장품도 약국에서만 취급하기도 합니다. 이를 일반 유통채널에 넘기면 막걸리가 지금 뜨고 있듯이 일반의약품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사안은 주무부처가 추진하기 힘듭니다. 결국 국민 의식이 뒷받침돼야 정부도 추진할 수 있게 됩니다. -BHP빌리턴과 리오틴토의 기업결합심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세계 2•3위 철광석 업체인 두 회사의 결합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3국의 공조가 중요합니다. 이달 중순에 일본 공정거래위원장이 참석하는 가운데 한일 경쟁정책 연례협의가 열립니다. 그때 긴밀히 협의할 예정입니다. 현재도 기업결합담당 국장급 실무자들이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고 중국과도 역시 협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두 회사가 조인트벤처 형태로 합병하기 때문에 판단하기가 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업결합 자체를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고 결합은 허용하되 행태적인 규제수단을 부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담합 과징금 부과를 많이 받았습니다. ▦국내에서 과징금을 내면 국고로 들어갑니다. 2005년 이후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낸 담합 과징금만 수조원에 이릅니다. 미국에서는 담합을 중대범죄(펠로니)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사업자 단체끼리 모임을 하는 등 끈끈한 문화적 전통이 있어 마인드가 바뀐 경제환경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위원장 취임 이후에 해외 담합과 관련해 전자•조선•보험 등 주요 산업 CEO를 만나 당부해오고 있습니다. -최근 항공사 담합을 비롯해 공정위가 국제 담합사건 처리를 주도해오고 있습니다. 해외에서의 인식은 어떠한가요. ▦공정위가 경쟁당국 중에서는 아시아에서 압도적인 1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퀄컴•인텔과 같은 국제적인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심결을 내리고 처벌을 했습니다. 얼마 전 열린 항공사 화물담합 사건 때도 외국 항공사들의 담당 임원들이 공정위 심판정에 서야 했습니다. 특히 공정위는 반경쟁 정책뿐 아니라 소비자 정책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단일 기관이 두 기능을 동시에 맡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경쟁정책과 소비자 정책의 접점을 잘 조율하면 코리안 모델을 만들어 세계 표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징금이 부과될 때마다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나옵니다. 특히 경제위기•경영난을 이유로 과징금을 깎아주는 것에 대한 비판도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과징금 부과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올리는 매출액 규모가 국내보다 훨씬 크다 보니 과징금 절대 금액이 큽니다. 과징금 부과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담합을 처벌해 경쟁을 촉진하는 것인데 과징금이 과다해 사업자가 시장에서 퇴출될 경우 오히려 경쟁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과징금 납부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준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는 있다고 판단해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당기순손실•유동비율•자본잠식 등과 같은 경영지표를 기준으로 객관적인 감경기준을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하반기에 과징금 고시를 개정할 계획입니다. -공정위가 30개 품목에 대해 국내외 가격차를 공개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특히 명품과 같은 고가품일수록 국내 판매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수입품 유통과정을 개선할 방법은 없는지요. ▦배타적 수입면허 때문에 수입품 가격이 국내에서 더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로서는 국제 가격을 비교해서 소비자에게 공표하고 있는데 소비자에게 알리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습니다. 우선 이번에 30개로 출발하는데 앞으로 더 늘릴 수 있습니다. 병행수입을 제한하고 있는 부분도 문제입니다. 정책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노력하겠습니다. -대기업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열사에 물량을 몰아줬다는 것만으로는 부당지원으로 제재를 가하기는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적절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대기업집단 사전규제가 완화된 후에는 부당지원 등 사후감시가 보다 강화돼야 한다는 요구가 많습니다. 공정위는 3~4월, 그리고 6월 2차례에 걸쳐 대기업집단 계열사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현행 '부당지원행위 심사지침'은 물량 몰아주기에 대한 위법성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법 위반 판단이 어렵고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도 낮은 상황입니다. 시장의 자율감시가 더 중요하다는 정책 기조하에 좀 더 부당성 기준을 구체화해 기업들의 자율적인 법 준수 기반을 만들 계획입니다. -우리은행 민영화가 본격화됩니다. 기존 은행이 인수하게 되면 독과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데 이에 대한 공정위의 입장은 무엇인지요. ▦현행법상 은행 합병에 대한 허용 여부는 금융위원회와 공정위가 협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돼 있습니다. 합병과 관련한 가능한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경쟁제한성 문제를 사전에 예비 검토해 신속히 매각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입니다. ■약력 ▦1954년 경북 영천 ▦1974년 경복고 졸업 ▦1978년 서울대 법학과 학사 ▦1991년 서울대 법학 박사 ▦1999~2009년 성균관대 법대 교수 ▦2007~2009년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자문위원장 ▦2008~2009년 경쟁법 학회장 ▦주요 저서 '경제법' '지배구조개편의 후속과제' '공정거래심결사례 국제비교'
"룰 만들고 반칙엔 휘슬… 공정위는 축구심판"
정부 시장관리·간섭 마인드, 대중영합주의·연성규범 미비…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아 정호열 위원장이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을 맡은 후 공정위의 이미지는 '경제 검찰'에서 '시장경제의 수호자'로 부드러워졌다. 이는 정 위원장의 공정거래당국에 대한 철학이 공정위 색깔에도 반영된 것이다. 그는 "공정위는 월드컵 심판과 같다"고 말했다. 경기장(시장)에서 선수(기업•소비자 등 경제주체)들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룰을 만들고 선수가 반칙을 할 때는 과감히 휘슬을 부는 것이 바로 글로벌 시대의 공정위가 할 역할이라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이 같은 공정거래당국의 역할을 해내는 데 도전이 되고 있는 세 가지 과제를 꼽았다. 우선 정부 부처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 변화다. 그는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정치인과 관료가 이끌어가는 관리경제였지만 1980년대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1990년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드디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시장이 운용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아직도 경제부처 등에서는 시장을 늘 관리하고 간섭하려는 마인드가 남아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두번째로는 대중영합주의. 그는 "정책은 표심을 향하게 된다"며 "대의민주주의와 대중영합주의는 숙명적으로 병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세사업자•서민 보호를 앞세워 시장경제를 제한하는 규제들이 마구 생겨나고 있다는 게 정 위원장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영합주의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라고 꼽았다. 세번째는 연성 규범의 미비다. 그는 "우리나라의 시장경제 경험이 짧다 보니 법령•시행령 등 성문화된 법령은 잘 정리돼 있지만 성문법이 해결할 수 없는 연성 규범은 아직 크게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타율적으로 제재하면 새로운 형태의 간섭이 된다"며 "공정위의 지원 속에 기업들이 자율적인 협력모델이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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