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秘錄, 김우중 신화의 몰락] <제3막 4장> GM 스토리: 千日夜話①

질긴 악연…GM, 대우車인수직전 또 쓴맛

몰락 순간까지 재기의 꿈 꿨지만… 워크아웃으로 몰락의 길에 들어선 김우중 회장.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부평공장에 상주하며 GM과의 협상을 통한 재기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사진 위). GM은 그런 그를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다. 한(恨)이 맺혔던 것일까. 그의 망령은 GM을 두고두고 괴롭혔다. 수의계약으로 대우차를 인수하기 직전 GM은 폴 드렌코(사진아래 왼쪽) 이사를 단장으로 한 포드 협상팀에 또 다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서울경제 DB


[秘錄, 김우중 신화의 몰락] GM 스토리: 千日夜話① 질긴 악연…GM, 대우車인수직전 또 쓴맛 김영기 기자 young@sed.co.kr 관련기사 • 秘錄, 김우중신화의 몰락 [전체보기] ㆍ워크아웃 이후 칼자루는 채권단에 ㆍ99년10월 협상가 7兆원대 소식도 ㆍ섣부른 기대속 GM 또 만만디 전술 ㆍ국부유출 논쟁속 새손님 포드 등장 ㆍGM, 일괄인수안 제시했지만 패배 ㆍ"99년에 못팔아 3兆원규모 날렸다" 대우차의 전신인 신진자동차와 GM이 제휴를 맺었던 1972년부터 김우중 회장이 대우차에서 완전히 손을 뗀 1999년까지 27년간에 걸친 인연(因緣)의 사슬. 그 끝은 비정하고 초라했다. 그는 이미 채권단이 만들어 놓은 형장(刑場)에 옭아 매였고, 그런 그를 GM은 냉정하게 저버렸다. 게임의 결과는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GM은 한 때 김우중에게는 연인처럼 가까웠지만, 그를 버리고 정부와 채권단이라는 새 파트너와 손을 잡았다. 여기서부터 또 한번의 길고 긴 스토리가 이어진다. 김우중 회장이 남기고 간 대우차와 GM이 연출하는 천일야화(千日夜話)가 바로 그것이다. 워크아웃 결정 여드레가 흐른 99년 9월4일. 김우중 회장이 용인의 대우 인력개발원을 찾았다. ‘전국 지점장 영업력 강화 세미나’. 지점장들의 모임에 그가 참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패장(敗將)의 모습으로. “대우를 세계 10위권 자동차 회사로 진입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고…모범적인 경영인으로 마무리하겠다.” 마지막 미련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워크아웃이란 새로운 무대는 김 회장에게는 너무 낯선 제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GM과 최후의 게임을 통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버려진 김우중’에게 눈을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곳간 열쇠는 채권단에 넘어갔고, GM에 매달리는 모습은 쓸데 없는 경영간섭이라는 비판만을 불러왔다. 대신 부실경영 책임론이 새롭게 그를 조여 들어왔다. GM은 그런 그와 더 이상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김 회장을 밀어낸 정부와 채권단은 기다렸다는 듯, 대우차 주채권은행을 서울은행에서 산업은행으로 바꿨다. 그리고 새롭게 GM과의 핫라인을 열었다. 협상에 참여했던 GM 관계자의 발언은 참 싸늘했다. “협상이 (김 회장 주도 아래)조기 타결될 가능성은 워크아웃과 함께 사라졌다. 칼자루가 채권단으로 넘어 갔는데 대우와 협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몰락 순간까지 재기의 꿈 꿨지만… 워크아웃으로 몰락의 길에 들어선 김우중 회장.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부평공장에 상주하며 GM과의 협상을 통한 재기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사진 위). GM은 그런 그를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다. 한(恨)이 맺혔던 것일까. 그의 망령은 GM을 두고두고 괴롭혔다. 수의계약으로 대우차를 인수하기 직전 GM은 폴 드렌코(사진아래 왼쪽) 이사를 단장으로 한 포드 협상팀에 또 다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서울경제 DB 9월 한달, GM은 엉뚱하게도 기초 실사에 매달렸다. 1년반 내내 협상을 이어오며 대우로부터 실컷 자료를 받았을 텐데도…. 채권단 고위 관계자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달했다. “나중 알게 됐지만 그때까지 대우는 GM이 요구한 자료의 5%도 주지 않았더군요. 워크아웃 후에야 모건스탠리에 주간사 임명 서한을 써주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 겁니다.” 10월초. GM은 지겹도록 겉만 돌았다. 태도가 바뀐 것은 워크아웃 50여일이 흐른 10월12일이 돼서 였다. 루 휴즈 사장을 단장으로 한 실사단이 한국을 찾은 것이다. 접촉 상대는 채권단과 정부. 물론 김 회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협상에 가속도가 붙는 분위기였다. 앨런 패리튼 GM코리아 사장은 수십년 동안 쌓아 놓은 한국의 지인들과 막후 협상을 하며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협상은 속도를 내자 매각 가격이 6~7조원에 이른다는 소식까지 흘러 나왔다. 당시 상황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정부 당국자의 회고. “60억달러 언저리에서 얘기가 오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죠. 원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30억달러를 더 투자해야 한다면 가격도 30억달러가 빠지는 거죠. 결국 실제 매각액이 30억달러일지 50억달러일지, 아니면 10억달러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셈이었죠. 그것도 모0?우리는 김칫국만 마셨으니….” 협상 가격까지 나오자 국민들 희망은 점점 커졌다. 협상 골격도 갖춰지는 듯했다. 금융감독위원회 실무자의 발언은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굿 컴퍼니’(우량자산기업)와 ‘배드 컴퍼니’(비우량 자산기업)로 나눠 파는 방안이 얘기되고 있다. 채권단이 굿 컴퍼니에 일정지분을 출자한 후 이득을 챙기는 구도다. 배드 컴퍼니에는 남는 부채를 넘겨 정리하고. GM측도 선호하고 있다.” 분할 매각 방안, 베일에 가려 있던 협상안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협상은 이렇게 GM과의 수의 계약으로 갈무리되는 듯했다. 모든 게 금새 끝날 것처럼 보였다. 이헌재 금감위원장마저 “소더비 경매 식으로 팔아선 곤란하다”며 수의계약 형식에 손을 들어줬다. 지나친 낙관이었을까. 김우중 회장을 녹아 떨어지게 했던, GM의 만만디 전술이 또 다시 등장했다. 우리의 기대는 한마디로 짝사랑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흥분했지만, 정작 그들은 조용히 워크아웃 방안이 확정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경영진과 인원 정리, 부채 탕감 규모에 이르기까지…, 살 물건이 어떻게 포장되는지를 지켜본 것이다. 교착. 여론은 협상이 질질 끄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방향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국유화 논란이 일더니, 해외 매각에 반대하는 ‘국부 유출론’이 터져 나왔다. 정치권은 기간 산업을 해외에 팔아서는 안 된다며 국민의 애국심에 영합하고 나섰다. “정부의 처리 방식은 국가의 기틀이 되는 산업 육성책을 무시한 처방이다. GM이 인수하면 우리 자동차 산업은 침체될게 뻔하다. 외국기업 참여를 허용해도 우리 기업이 경영권을 갖고 회생시킬 방도를 찾아야 한다”(자민련 이상현 의원) 이번엔 난데 없이 삼성을 인수 주체로 하는 역빅딜 논의까지 다시 불거졌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역빅딜이다. 삼성은 반도체 호황의 재미를 보고 있기 때문에 여력이 충분하다.”(국민회의 김경재 의원) 언론도 가만 있지 않았다. 해외 매각을 해서는 안 된다며 연일 들고 일어섰다. 확산되는 국부 유출 논쟁, 매각 작업에 급 브레이크가 걸렸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금에 와서야 안타까운 심정을 이렇게 드러냈다. “경제상황이 좀 나아지니까 수의계약이 아닌 복수입찰로 매각해야 한다는 논리가 강해지더군요. 대우차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고 무조건 반대한 것입니다. 그나마 대우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수의계약을 하고 싶어도 책임론이 대두될게 뻔하니 나설 수도 없고. 압력이 있더라도 밀고 나갔더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공개입찰로 돌아가는 모습에 이래선 안 되는데…, 하고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저라고 별 수 있었겠습니까.” 여론의 거센 비판에 GM과의 협상 추진력은 현저히 떨어져 갔다. 바로 이때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했다. 포드였다. 거센 비판 여론에 산업은행은 제3의 원매자를 찾아야 했고, 포드가 그때 나타난 것이다. GM으로선 비극이 예고되는 순간이었지만. 12월8일. 드랜코 포드 이사가 김포공항을 통해 들어왔다. 포드의 출현은 급기야 이헌재의 마음까지 돌려 세웠다. “대우차 인수를 원하는 투자자가 있으면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겠다.” GM에 대한 배타적 협상권리를 박탈하겠다는 신호였다. 한 전직 장관의 말에는 애정어린 비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헌재 장관은 자의든 타의든, 두 번의 결정적인 정책 실패가 있었습니다. 제일은행을 뉴브리지에 넘긴 것을 꼽을 수 있고, 또 하나는 99년말 아무리 힘든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대우차를 수의 계약으로 GM에 넘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 때 팔았으면 (최종 매각액의 10배인)30~40억달러 정도는 받았을 텐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다 부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국부유출 논란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적어도 당시 상황에선 분위기를 우리쪽으로 돌리는데 성공한 듯 보였다. 그토록 튕기기만 했던 GM의 몸이 달기 시작했으니. 12월14일, GM은 일괄인수 방안을 공식 제안했다. 2년 전 쌍용차 인수전에서 김 회장에게 당했던 패배의 악몽을 떠올렸던 것일까, GM은 제안서를 제출하며 자기들과만 협상할 것을 요청했다. 우리측도 ‘제한적 경쟁입찰 방식’이란 카드를 내밀며 그들의 요구에 따랐다. 반전. GM이 한 수 접고 나왔지만 여론은 여전히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포드에 이어 현대차까지 GM과의 일방적 협상에 반발하고 나섰다. 여기에 또 하나의 결정적인 변수. 수개월째 이어져온 대우 해외 채권단 협상이 이듬해 1월22일 타결된 것이다. 오호근 전 기업구조조정위원장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돌이켜 보면 해외채권협상 타결이 대우차 매각에는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지 않아요. 가뜩이나 해외 매각에 비판적이었던 국민에게 위기를 넘겼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게 한 거죠. 뭐가 급하다고 헐값에 파느냐, 게다가 GM과 수의계약을 하다니…. ” 2000년 2월. ㅊ灌?결국 대우차를 국제 입찰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넉달 뒤인 6월 뚜껑을 연 결과, GM은 쓰라린 패배의 잔을 마셔야 했다. “포드:7조7,000억원, 현대차-다임러크라이슬러:5조∼6조원, GM-피아트:4조∼5조원.” 결과는 결국 뒤늦게 뛰어든 ‘새로운 손님’포드의 승리로 끝났다. 김우중 회장의 악령(惡靈)은 이렇게 GM을 두고두고 괴롭혔고, GM과 대우는 또다시 인연을 맺는데 실패했다. 지독히도 질긴 악연의 사슬이었다. 입력시간 : 2005/06/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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