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조6,000억원에 달하는 기업구조조정기금은 투자실적이 미미한데다 그나마도 기업회생보다는 유망기업에 대한 투자에 더 큰 비중을 둠으로써 일반 뮤추얼펀드와의 차별성 확보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특히 금융권의 출자로 마련된 기금이 일부 기업들의 무차별적인 사업확장에 쓰인 흔적이 역력해 기금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방안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29일 정부관련부처및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자금지원을 시작한 서울부채조정기금, 아리랑·한강·무궁화구조조정기금등 4개 기업구조조정기금의 투자실적은 6개월동안 전체 기금의 4분의 1이 조금 넘는 4,621억원(29개업체)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그나마 투자대상의 대부분은 투자에 따른 차익을 올릴 가능성이 높은 유망기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펀드의 경우 최근 신기술금융업, 인터넷경매분야 등으로 사업확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견 섬유업체 W사에 150억원을 투자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W사의 한 임원은 『현재 현금흐름에는 문제가 없으나 금리가 저점에 다다른 것으로 판단되어 회사의 수익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기금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말했다.
회생자금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기업들이 부지기수인데 정작 이들을 도와야 할 기금은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구조조정기금이 투자한 기업중에는 경영상태가 실제로 좋지 않은 기업들도 있으나 B사, T사등 대기업계열사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금의 투자실적이 저조한 이유도 설립취지에 맞게 단기적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집중되기보다는 유망기업 물색에 치중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구조조정기금이 출발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설립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
이 기금을 만든 재정경제부는 원래 세계은행(IBRD)자금을 사용해 펀드를 만든 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만을 대상으로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IBRD의 반대로 계획이 무산되자 산업은행등 25개 금융기관을 출자를 받아 기금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행 기금 구조로는 기업에 대한 지원보다 수익성에 더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며 『설립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정체성이 모호해진 기업구조조정기금의 투자에 일부 제한을 두고 있는 관련법규를 개정해 일반 뮤추얼펀드와의 차별성을 아예 없애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박동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