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건설공사엔 「감리」가 없다/설계·감리·입찰담합­긴급진단

◎업체서 돈받고 서류에 도장만…/담당자 현장엔 나오지도 않아/시공사와 짜고 대충 무마예사/435사 영업… 기술자 제대로 있는 곳 거의 없어『우리나라 건설공사에서 감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검찰수사로 대표가 불구속기소된 A사 관계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건설업체에 비해 힘이 없는 설계·감리업체들로서는 시공사나 발주자의 눈치를 봐야 하니 제대로 된 감리를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는 『민간공사의 감리는 엉망진창입니다. 감리자는 공사현장에 얼굴 한번 안 내밀고 시공사 직원이 일주일에 한번 서류를 갖고 찾아가서 감리자에게 도장만 받아오는 경우도 허다합니다』고 덧붙인다. 정부가 감리제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부터. 국책사업인 경부고속철도의 경우 초기에는 토목공사 감리경험이 전혀 없는 한국고속철도공단에서 감리를 맡았다. 이후 천안∼대전간 시험선 구간의 부실시공이 문제가 되자 뒤늦게 독일의 DEC사와 국내업체를 공동감리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아직도 국내 건설공사의 감리는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민간 감리업체 양성을 위해 책임감리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는 감리자와 시공자간의 먹이사슬 부작용만 낳고 있다. 현재 국내 감리업체는 모두 4백35개. 이 가운데 종합감리회사는 1백5개에 달한다. 수치만 보면 결코 적은 규모가 아니나 속을 들여다보면 구멍가게에 가깝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대부분이 영세한 업체들로 제대로 된 감리 능력을 갖춘 업체는 많아야 20∼30개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회사 설립에 필요한 감리 기술자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업체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현행 책임감리제도가 사전자격심사(PQ)시 설계·감리를 같은 업체에서 맡을 경우 10%의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건교부측은 감리자가 설계 내용을 잘 알아야 원활한 공사진행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설계·시공상의 잘못이 있더라도 감리자가 이를 시정토록 하기 보다는 시공사와 짜고 대충 무마하는 「누이좋고 매부좋은」식으로 악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에서 하는 공사일 경우 시공자는 감리자에게 호텔방을 잡아주고 접대를 합니다. 건설업체 치고 감리자를 겁내는 회사는 없을 것입니다.』 중견건설업체인 K사 간부의 귀띔이다. 부실시공 예방의 최후 보루가 될 감리가 오히려 부실시공의 공범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책임감리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감리용역비용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종합설계·감리업체인 S사 관계자는 『전체 공사비중 감리용역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2% 수준으로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며 『제대로 된 감리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감리비를 현실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설계·감리시장이 이처럼 후진성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감리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 결여에서 비롯된다. 감리는 법에 규정돼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지 이것이 「건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 우리 건설문화다. 감리에 대한 정부와 건설인들의 근본적인 사고가 바뀌지 않는 한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더라도 부실시공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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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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