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원산지 세탁


중국산 쌀을 국산으로 속여 유통한 원산지 세탁꾼들이 적발됐다. 경찰은 중국산 쌀의 포장을 바꾸는 이른 바 '포대갈이'수법으로 58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32명을 잡아들였다. 적용될 죄목은 원산지 표시법 위반. 조직폭력배까지 낀 이들이 유통시킨 물량이 13만포대라니 언제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원산지 표시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1887년. 독일이 영국의 강요로 대영 수출품에 '독일산(Made in Germany)'이라는 원산지표시를 붙였다. 밀려들어오는 저가 독일제품의 수입을 막으려 상표법까지 제정했던 영국과 '굴욕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던 독일의 처지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완성도 높은 제품 생산에 전력을 기울인 덕분에 '독일산'은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영국은 상표법을 11년 만인 1897년 폐기했으나 독일은 오히려 원산지 표시를 모든 수출상품에 달았다. 주요수출국들도 이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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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가인 찰스 킨들버거는 명저 '경제강대국 흥망사'에서 원산지 표시를 둘러싼 영국과 독일의 사례가 50년 뒤 미국과 일본에서 되풀이됐다고 강조한다. 조악하다는 일본 제품에 대한 인식이 짧은 시간에 신뢰로 바뀐 것이다. 다만 초기에는 얕은 꾀를 부린 사례도 있다. 일부 일본 기업이 수출품에 'Made in USA'라는 표식을 붙인 것. 누가 뭐라 하면 오이타현의 우사(宇佐ㆍUSA)에서 만든 제품이라고 둘러댔다. 사기임에 분명하지만 수출에 대한 일본의 열망이 그만큼 강했다.

△독일과 일본의 원산지 표시가 저가 모방제품이라는 낙인에서 우수한 제품의 보증증표로 바뀐 데에는 고품질을 향한 끝없는 혁신 노력이 깔려 있다. 어떻게 해서든 수입 제한과 인식의 벽을 넘으려는 의지마저 닮은 꼴이다. 우리는 어떤가.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우려던 독일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의 원산지 세탁은 마당 안에서 동족을 상대로 삼는 사기 행각에 지나지 않는다. 10대 무역대국이면서도 명품 짝퉁의 천국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않다. 짝퉁 생산과 유통의 피라미드 조직화 소식도 들린다. 언제까지 안에서 싸우고 흉내만 내고 있어야 하는지…./권홍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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