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새로운 길 앞에 선 유럽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이틀 앞둔 지난 11월1일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수상은 유럽연합(EU)의 2차 구제금융안과 유로존 잔류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내각에 대한 신임투표를 염두에 둔 정치적 도발로 인해 이틀간 세계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고 세계인의 이목은 다시 한번 그리스로 집중됐다. 그리스 불확실성 단기 해결 불가 다음날 파판드레우 수상은 G20 정상회의 준비에 바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불려가 당장 80억유로의 구제금융 6차분을 줄 수 없다는 경고와 함께 크게 질책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강력한 비판에 직면, 결국 이틀 만에 국민투표를 그야말로 '없던 일'로 되돌렸다. 신임투표를 가까스로 통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스의 불행은 크게 두 가지다. 재정위기가 유로존의 구조적인 불균형에서 비롯돼 단기적으로 해결되기 어렵고 경제위기가 정치적 위기 및 리더십의 부재와 혼재돼 있어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하여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얼마나 신속히, 그리고 충분히, 문제되는 부분에 개입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불확실성이 단기간에 완전히 없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지난 7월부터 윤곽이 잡히고 10월27일 EU 정상들이 합의한 2차 구제금융안은 적어도 방법론상에 있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담겨 있다. 1,000억유로의 추가 구제금융, 300억유로 상당의 민간채권단 지원금과 같은 자금 수혈뿐만 아니라 자금지원에 따른 채무국의 구조조정 등 자구책 마련을 전제로 하고 있었으며 채무 탕감도 포함돼 그리스 국채에 대하여 50%의 손실률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또 G20 정상회의는 위기예방 및 단기 유동성지원제도인 PLL(Precautionary and Liquidity Line)을 도입하기로 합의해 그리스 이외 유로존의 다른 위험국가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문제는 그리스 위기가 유로존 전체로 파급되는 것을 이런 장치가 막아내기에 충분한가, 또 위기가 다시 재발할 때 신속하게 지원될 수 있는 정치적 의사결정체계가 잘 구축돼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유로존의 내적 불균형이 결국 핵심국과 주변국의 경쟁력의 차이, 그리고 이로 인한 주변국의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와 정부 재정 문제라고 한다면, 상당한 정도의 재정 통합 없이는 위기는 언제든지 재발 가능하다. 하지만 재정 통합은 각 개별국가가 주권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는 정치 통합을 의미하기 때문에, 민주성의 결핍에 시달려온 유럽 통합의 역사에서 볼 때 재정 통합이야말로 지금까지 유럽이 성취한 유럽 통합의 궤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궤도로의 진입을 뜻한다. 유럽 통합론자에게는 지금까지는 가보고 싶었으나 계속 실패한,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이다. 정치 리더십 부족이 혼란 부채질 게다가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 논란은 그리스 한 나라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전세계 금융시장을 크게 출렁거리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또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유로존의 통일된 목소리도 여러 회원국의 합의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 만약 이탈리아로 위기가 전이된다면 EU를 넘어서 IMF의 PLL은 얼마나 빨리, 그리고 충분한 규모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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