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3시께 4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든 가운데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CIQ) 귀경심사대에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10분 간격을 두고 들어섰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 방북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 여사와 현 회장의 얼굴은 환했다. 전날 잔뜩 긴장한 탓인지 굳었던 얼굴은 1박2일 방북 기간 동안 북측으로부터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조문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두 사람 모두 편안한 얼굴이었다.
조문단은 현 회장 일행이 오후3시10께 경기도 파주시 CIQ에 먼저 도착했다. 현 회장 일행은 취재진에 "평양을 출발하기 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찬을 같이 했다"며 "일반적 얘기만 했고 순수 조문 목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는 안 했다"고 말했다. 또 대북사업 논의 여부에 대해선 "조문 목적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고 전했고 "다만 숙소인 백화원초대소를 떠나기 전 김정은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양건 통일선전부장을 만나 잠깐 인사를 나눴고 조문단을 배웅했다"며 금강산 사업과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에 대한 의견교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어 3시25께 이 여사 일행이 CIQ를 통해 입경했다. 이 여사 측 윤철구 김대중평화센터 사무총장은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의 별도 면담 여부에 대해 "(조문을 위해) 약 40~50분간 기다렸다가 10분 정도 면담할 수 있었다"며 "나눈 얘기들은 일반적 대화로 국한된 순수한 조문"이라고 말했다. 조문에서 김 부위원장이 "멀리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짧은 응답을 했다고 전했다.
이날 조문단이 평양을 출발하기 전 이 여사와 현 회장은 북한 최고 수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면담했다. 김 상임위원장이 면담에서 "6ㆍ15 남북공동선언과 10ㆍ4선언을 강조하면서 잘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고 이 여사는 "6ㆍ15공동선언과 10ㆍ4선언이 계속 잘 이행되기를 바라며 저희 방문이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답했다고 이 여사 측 대변인인 윤 사무총장이 전했다. 그러면서 이 여사와 김 상임위원장은 이번 조의 방문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시 북측이 조문단을 서울에 보내준 데 대해 서로 감사를 표시했다고 덧붙였다.
방북 조문단은 당초 오전8시 평양을 출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김 상임위원장이 조찬을 제안하며 조문단과 면담을 했다. 김 상임위원장이 대외적으로 공식 직함이 북한의 수반이라는 점에서 조문단과의 조찬 등은 극진한 예우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우리 정부의 대북 유화 조치에 대한 북한이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고권력자인 김 부위원장과 면담은 아니지만 김 상임위원장 면담 자체가 우리 정부에게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기 먼저 손을 내민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문단은 계획보다 2시간가량 늦은 오전11시 평양을 출발해 오후1시20분쯤 개성공단에 도착했다. 개성 도착 이후 현 회장 측은 개성공단 내에 현대아산 사무실에 머물렀고 이 여사측은 입주기업을 둘러보며 개성공단을 시찰했다. 이후 3시10분, 20분 전후로 각각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 CIQ에 도착했다.
한편 전날 조문 과정에서 이 여사가 몇 마디 말을 건네자 이 여사에 비해 키가 큰 김 부위원장이 즉시 허리를 숙여 경청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등 깍듯하게 대했고 김 부위원장은 현 회장과의 만남에서도 두 손으로 현 회장의 손을 감싸 쥐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현 회장과는 마주 선 채 20초가량 대화를 나누며 깍듯한 예우로 대했다. 북한은 특히 남측 조문단을 개성 관문인 북측 통행검사소에 리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보내 맞이하는가 하면 북한을 찾은 최고위급 귀빈들이 묵는 백화원초대소를 숙소로 제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