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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7월 국내 증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범은 건설주 파동으로 이후 증시는 7년간 끝없이 추락하는 사상 최대 암흑기에 빠졌다. 건설주 파동의 원인은 중동특수와 강남개발 등 두 가지. 중동 지역에 건설 붐이 일어난데다 국내 기업들이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대형 공사를 수주, 실적이 늘면서 이들 건설주 주가가 크게 뛰었다. 정부가 '과밀화된 강북 인구를 분산한다'며 강북 지역 건물 신축 금지, 주요 시설 이전 등 강남 개발에 본격 나선 점도 건설주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39개 건설 종목 가운데 상승폭이 컸던 종목은 동아건설ㆍ대림산업ㆍ경남기업ㆍ삼익주택 등이다. 동아건설과 대림산업의 경우 투기 열풍 전 단 500원에 불과했던 주가가 7,500원, 8,900원까지 폭등했다 다시 440원, 410원으로 주저앉기도 했다. 일부 소형주는 한 달 이상 상한가 랠리를 펼치며 한때 3만원까지 치솟았다. 건설주 하루 거래량이 전체의 20%에 육박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자 한국거래소는 이들 33개 건설 종목을 감리종목으로 지정했다. 상한가 제한폭을 30원으로 제한하는 조치도 내렸다. 결과는 반대. 제재 조치로 거래량이 줄면서 주식을 매수할 수 없게 되자 오히려 투자자들의 투기가 확대됐다. 1977년 종합주가지수의 연간 상승률이 40%였으나 건설업종은 175%가량에 이를 정도였다.
끝없이 올라가기만 할 것 같던 건설주 주가는 1978년 6월28일을 정점으로 다시 추락했다. 정부가 증권거래세 신설과 금융긴축, 시가발행제도 도입 등 잇따라 규제정책을 쏟아낸데다 한때 '재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불렸던 원그룹ㆍ율산그룹 등이 도산하면서 건설주는 물론 증시 자체가 끝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79년 2차 석유파동까지 불거지면서 국내 증시는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장기 침체기에 빠졌다.
'정부 정책에 맞서지 말라'는 증시 격언이 있다. 아무리 큰 호재와 수급이 있더라도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면 정부가 나서 선의의 피해자를 막고자 규제 정책을 내놓을 수 있어 무리한 투자에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지나친 음주가 건상을 해치듯 투자가 아닌 투기는 투자자에게 수익은커녕 손실만 초래할 수 있다. 이미 증시 역사에서도 건설주 파동과 IT버블 등의 사례는 투자자들의 도를 넘는 욕심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