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구두개입'의 과잉과 의지의 과소

심상정<국회의원·민주노동당>

시장이 한쪽으로 급속하게 쏠릴 때 정책당국이 엄포를 놓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구두개입’이다. 당국의 구두개입에 시장 참가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모두 동일한 반응을 보일까. 경험에 따르면 전문 ‘꾼’들과 초심자는 다르게 반응한다. 하나의 사례를 보자. 앨런 그리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관련된 얘기다. 미국은 지난 94년 멕시코 위기를 계기로 금융기관 보호를 위해 신용팽창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여기에 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달러약세의 지속으로 수출기업들의 수익성이 회복되면서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그린스펀은 96년 말에 ‘구두개입’에 나섰다. 주가가 ‘비이성적 활력(irrational exuberance)상태’에 있다고 얘기한 것이다. 97년 2월과 3월에도 ‘주가급등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를 연거푸 날렸다. 시장의 반응은 두 갈래였다. 초보 투자자들은 그린스펀의 말에 놀라 주식을 사는 것을 망설였다. 그러나 전문‘꾼’들은 공격적으로 주식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주가는 다시 뛰기 시작했고 초심자들은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전문 ‘꾼’들은 그린스펀의 ‘말’보다 정책을 주시했고 그가 주가의 고공비행을 멈추게 할 아무런 조치도 마련하지 않자 확신을 갖고 주식 매집에 나선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부동산시장이 급속하게 쏠리고 있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부동산시장에 구두개입을 하고 있다. 집 없는 서민들은 대통령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집장만 계획을 뒤로 미뤘다. 반면 투기꾼들은 대출을 싹쓸이하다시피해서 매집을 서둘렀다. 대통령의 발언과는 달리 부동산 정책들은 가격을 안정시키는 쪽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를 전문 ‘꾼’들이 놓칠 리 없었다. 대통령의 발언만 본다면 부동산 가격 안정에 의지가 있는 것처럼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노무현 정권은 스스로 말하듯 부자정당인 한나라당과 정체성 면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 참여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주의 노선’은 철저하게 부자 중심 정책이다. 문제는 부자들에 굽신거리는 정책을 펴면서도 서민들 편에 선 듯한 ‘구두개입’을 할 때 애꿎은 서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부동산투기가 문제라면 투기를 제거할 정책을 마련해 실행하면 그만이다. 따로 ‘구두개입’에 나설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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