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아직도 사춘기?
어른들의 강요에 구속된 청소년들, 아직도 레드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분단 현실, 고도 성장 속 빈부 격차와 소외계층, 기득권층에 막혀 좌절하는 신인,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피터팬 증후군 등 우리 사회를 비쳐온 현대미술의 주제들이 사춘기를 앓는 청소년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석한다면 그럴법도 하다.
한국사회의 변화와 젊은 작가들의 심리적 갈등을 ‘사춘기’에 빗대 풀어낸 전시 ‘사춘기 징후’가 로댕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ㆍ조각ㆍ설치ㆍ영상ㆍ만화 등의 장르에서 활동하는 작가 12인의 작품 20여점이 선보인다.
작가들이 소년기나 학창시절 그리고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던 때를 기억하며 진행한 작업으로 ‘사춘기’라는 인생의 과도기에 겪는 내면적 모순이 잘 나타나있다. 작품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항 보다는 새로운 하위문화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유희와 상상력이 엿보인다.
전시장에는 ‘한열이를 살려내라’ 등 80년대 민중미술사의 한 획을 그었던 최민화의 73년작 ‘분홍색 연작’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별볼일 없는 두 남자의 모습을 분홍빛으로 그린 이 작품은 배경 없이 인물만 도드라져 있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얼굴에는 현실에 대한 막막함과 애절함이 분노로 붉게 물들어 있는 듯 하다. 그림 속 남자는 제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랑아처럼 떠돌던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교복을 주제로 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작가 서도호는 남학생 교복 60개를 이어 붙인 조형물과 졸업앨범을 스캔해 좁쌀크기로 축소, 벽면 전체에 붙여 개인의 자율성이 박탈된 학교생활의 단면을 보여준다. 특정계층의 인물을 사진으로 표현해 온 작가 오형근이 교복입은 여학생의 모습을 회색조로 뽑아냈다. 순진한 얼굴을 한 이들의 모습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순수성과 어린 여자에 대한 성적 욕망을 일컫는 롤리타 신드롬이 교차한다.
자리를 옮기면 플라잉시티가 서울에 집중된 한국의 근현대사에 착안한 조각 ‘고공비행’이 허공에 매달려있다. 최근 10년간 서울시 전역 25개 지역별 집값 상승 추이를 분석해 집값의 격차를 통해 드러난 기형적인 서울의 모습을 비현실적인 조형물에 담았다.
10대들의 문화에 좀 더 다가서는 작품들도 소개된다. 만화가 현태준은 레고 블록 크기의 조그마한 조각을 바닥에 깔고 손바닥만한 그림을 벽에 걸었다.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소박한 개인의 욕망이 간과되기 쉬운 현실을 작품을 통해 풀어낸다. 그 밖에도 새침한 YP의 엽기적인 일러스트, 임민욱의 영등포 지역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힙합뮤직에 담은 비디오 작품 등을 통해 사춘기에 대한 작가의 감성을 드러낸다. 전시는 11월 5일까지다. (02)6258-3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