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스트리트는 '야누수의 얼굴'

월스트리트는 '야누스의 얼굴'존 스틸 고든 지음, '월스트리트 제국' 미국의 거대 에너지기업 엔론사의 파산이 미국 정계와 경제계를 뒤흔들고 있다. 거액의 분식회계와 대규모 정경유착 의혹으로 충격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의 논리인 ‘글로벌 스탠다드’가 위기를 맞았다며 조롱하는 시선도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IMF 금융위기를 뿌리 깊은 정실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면서, 미국식 경제구조 개혁을 압박했던 초국적 금융자본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니…” 헛웃음을 치는 이들도 있다. 미국 재계순위 7위였던 엔론사의 분식회계는 불투명한 경영의 상징이요, 정치인에 전달된 거액의 정치자금은 뿌리깊은 정경유착의 실상이었다. 사실 세계 경제를 손아귀에 틀어쥐고 움직이는 뉴욕의 금융중심지 월스트리트는 투명한 자본시장으로서의 얼굴과 온갖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는 또 다른 얼굴을 지닌 ‘야누스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역사는 때론 불법과 탈법이 기승하여 거품을 만들고, 때론 자성의 목소리가 힘을 얻어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엔론사태의 경우 불법과 탈법의 시대가 낳은 월스트리트의 부끄러운 자화상인 셈이다. 경제 칼럼니스트 존 스틸 고든의 ‘월스트리트 제국’은 이러한 월스트리트의 350년 역사(1653~2001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알렉산더 해밀턴, 코닐리어스 반더빌트, J.P.모건, 찰스 메릴, 앨런 그린드펀 등의 월스트리트를 움직였던 거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사기와 협잡, 애국심, 권력을 향한 욕망, 천재성, 우둔함 등의 엇갈림. 책에서 펼쳐지는 월스트리트의 역사는 말 그대로 야누스의 얼굴이다. 한편으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웃도 눈 하나 깜짝 않고 해칠 수 있었던 극단 적인 이기주의자가, 또 한편으론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했던 성실한 금융인이 두 축을 형성하면서 오늘날의 월스트리트를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판을 칠 때면 어김없이 거품과 몰락이 발생했고, 그 반작용으로 개혁을 통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시장’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되풀이 됐다”고 말하면서 두 가지 실례를 든다. 첫째, 월스트리트는 1920년대 거품이 1929년 파국으로 끝나면서 루즈벨트의 개혁조치에 의해 일반 시민들도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자본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둘째, 1980~90년대 ‘탐욕의 시대’재도래. 1980년대 규제완화와 자유화, 시장의 이름 아래 탐욕의 싹이 텄고, 1990년대 인터넷 거품은 그 탐욕을 턱 없이 키워놓았다. 저자는 현재 월스트리트의 치부가 하나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진행된 금융자본의 전지구화 현상과 관련이 크다고 말한다. 금융자본의 움직임은 세계화했지만, 자본의 운동을 감시ㆍ감독하는 심판자인 ‘전지구적 금융감독기구’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든은 “사회주의 최대 약점은 사회주의 그 자체이고, 자본주의 최대 약점은 자본가 그 자체”라며 분명한 게임의 규칙이 없이 글로벌화한 금융시장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저자의 대안은 ‘전지구적 금융감독기구’의 조속한 도입. 그러나 필연적으로 국가들의 주권을 제약해야 하는 감독기구의 도입이 수월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저자는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글로벌화한 관리시스템이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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