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하반기 경제운용 해법 찾아라] <하> 투자 프렌들리 복귀하라

'獨 감세·규제완화·자금지원' 벤치마킹… '곳간 130조' 투자 유도를

세부담 늘고 규제개선은 미미… 정책 역주행에 투자심리 꽁꽁

중기·벤처도 자금 조달 쉽게 금융건전성 규정도 손질해야

상장기업들이 130조원대에 육박하는 현금을 쌓아놓고 있지만 정책 불확실성, 대외변수 등으로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경제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울경제 DB


지난달 LG경제연구원은 '동향과 진단' 보고서에서 기업투자 현황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해 국내 상장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전년보다 20조8,000억원이나 증가해 130조원에 육박(129조7,000억원)한다는 내용이다. 국내 기업들의 현금보유 성향도 지난해 크게 반등해 9.1%(가중평균치 기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는 외환위기를 겪던 지난 2009년(9.5%)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기업들의 투자 감소가 현금성 자산 급증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 돈으로 기업들은 설비 등을 늘리는 대신 주로 빚을 갚았다.

투자부진 상황은 올해에도 다르지 않다. 경기부진을 벗어나려는 정부로서는 애가 탄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퇴임을 목전에 두고 주요 경제단체장들을 불러 기업들의 투자를 요청했을 정도다. 그러나 산업계로서는 이런 정부의 채근이 영 불편하다. '판'을 깔아놓고 투자를 유인해도 모자랄 판에 그간 정부정책은 역주행하거나 미흡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재계 단체 간부는 "일반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려면 감세를 하고 규제를 푸는 게 정석인데 현 정부는 기존 정부의 감세정책을 중단했고 규제 해소를 약속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당정은 지난해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을 추진해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고 각종 비과세·감면 축소나 요건 강화를 통해 기업의 실질적 세 부담을 높였다. 규제와 관련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재계 총수들과 만나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엽적이고 자잘할 규제 완화가 주를 이뤘고 굵직한 핵심규제 해소 사례는 드물었다.


여기에 미래경기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기업인들의 투자심리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기업인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를 반영하는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실적치를 보면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시절 각각 평균 79.22, 79.42 수준이던 것이 현 정부 들어 5월까지 평균 72.59로 뚝 떨어졌다. 그만큼 지난 1년여간의 경제정책이 기업인들에게 신뢰 받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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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 방안을 짤 때는 보다 투자친화적인 처방으로 기업인들을 다독여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구도 한국은행 지역경제팀장은 "최근에는 기업의 심리 악화가 실물경기의 부진을 유발하고 이것이 다시 기업심리를 한층 더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며 "기업의 투자심리를 개선시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기업의 투자심리를 되살리기 위한 정책 조합에 대해서는 독일식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발 재정위기 속에서도 독일을 경제모범생으로 안착시킨 앙겔라 메르켈 정부의 경제정책을 한국형으로 각색해 응용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제언이다. 이승원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주임연구원은 "메르켈 정부는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감세를 추진하는 등 정책의 장기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고 노동시장 등에서 규제를 적극적으로 풀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덜어줬다"고 평가했다. 이어 "독일 정부는 저축은행 등 은행권을 통해 안정적으로 산업자금을 지원했는데 이 덕분에 기업들은 과도하게 현금을 보유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떨치고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독일 정부는 2008년 법인세율을 15%대로 낮추고 고용 유연화를 확대하는 대신 노사정 간 공감대를 이끌어내 고용보장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고용률을 개선해 국민적 반발을 잠재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를 일부 보충하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정치적 부담까지도 감수했다. 이들 하나하나의 이슈가 초민감 사안이지만 독일 정부는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이해를 구하고 확실한 경제성장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박근혜 정부의 그간 정책은 메르켈의 해법과는 상반된다. 상대적으로 여론의 반발이 적어 마녀사냥하기 쉬운 대기업 등을 표적으로 삼아 법인세 부담을 늘리는 쉬운 길을 택했다. 아울러 사회보장재원을 확충하려 하면서도 부가가치세 증세와 같은 사안은 정치적 부담감 때문에 공론화를 피하는 등 포퓰리즘적 행보를 보였다. 그나마 고용에 대해서는 유연성과 안정성을 함께 제고하겠다는 내용을 올해 초 경제혁신3개년계획에 담았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은행정책 역시 독일과는 달랐다. 국내 은행들은 리스크를 안고 중소·벤처기업에 적극 대출해주기보다는 부실 위험이 적은 주택담보대출영업 등에 적당히 안주하면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을 하고 있는데 금융 당국은 이를 사실상 방조해왔다.

이에 따라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마련할 때는 기업의 세 부담 경감, 고용규제 개선, 산업자금 돈줄 확충 등이 담기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특히 은행권들이 중소·벤처기업들에 장기대출로 안정적 자금을 조달해줄 수 있도록 금융건전성 관련 규제 등을 일부 손질하고 실적이 좋은 은행에는 인센티브도 주는 방안 등이 고려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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