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예산의 정치학

“그렇게 멀리 가놓고 얼마쯤이나 돌아올 수 있을까?” 열린우리당 비상집행위원 중 하나인 김영춘 의원이 2일 기자와 만나 한나라당의 ‘9조 감세안’을 놓고 한 말이다. ‘9조원’이라는 액수가 여야간 협상용 카드로 쓰이기에는 너무 많다는 여당의 입장을 비유한 김 의원의 이 말은 새해 예산이 결정되는 ‘정치공학’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이어 “이거는 주고 저거는 받고 해야 하는데 (한나라당 감세안은) 받을 수가 없어”라고 했다. 예산이 여야간에 주고받기 식으로 결정된다는 얘기다. 정부가 새해 경제성장률을 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세출ㆍ세입 규모를 산출해 국회로 넘기면 국회는 예산심의를 통해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해 새해 예산을 최종 결정한다.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이 같은 가감(加減)의 기준은 ‘여야의 이해관계’다. 꼭 필요한 씀씀이인가 하는 ‘경제원리’는 새해 예산안이 과천(재정경제부)에서 여의도(국회)로 넘어오면서 ‘정치원리’에 눌려버리기 일쑤다. 지난해 말 정기국회 예산심의 때 이한구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중간쯤에서 절충되지 않겠어”라고 말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7조원’을 깎자고 했고 우리당은 ‘4조원’을 늘리자고 맞서는 상황이었는데 실제 예산 규모는 이 의장의 말대로 두 액수의 중간 정도인 ‘2조원’을 줄이는 수준에서 결정됐다. 예산협상 테이블에 앉는 각 당 실무자들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미리 부풀리기’ 전략을 쓴다. ‘정부 원안 관철’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야당의 감세론을 차단하기 힘들다고 판단하는 여당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차라리 ‘증세론’으로 맞불전략을 쓰자는 말도 나온다. 9조원 감세 규모가 우리당을 협상에 끌어들이기에는 과도하다는 것을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서병수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대행은 3일 “(9조원은) 당론이 아니라 실무진에서 검토한 1차안”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감세안의 규모가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여야의 정치공학은 기자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는 좋다. 하지만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 돌아서면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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