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韓·中·日 바둑최강전] 삼성화재도 탐난다

제1보(1∼12)


이세돌이 도요타덴소배와 함께 노린 기전은 삼성화재배였다. 삼성화재배는 도요타배보다 늦게 본선이 시작되었으나 빠른 템포로 진행됐다. 2004년 9월 1일에 시작된 본선은 사흘 후에 8강을 선발했고 10월 7일에는 준결승 진출자를 가려내는 일정이었다. 준결승은 11월, 결승3번기는 12월에 치르는 박력만점의 초스피드였다. 8월에 준결승을 치르고 이듬해 1월에 결승전을 벌이는 도요타배와는 대조적이었다. 이세돌은 본선1회전에서 차오다이엔을 꺾고 2회전에서 후야오위를 격파하는 상큼한 출발을 보였다. 8강에 오른 기사는 한국 대표가 4명이고 중국 대표 역시 4명이었다. 한국은 이세돌, 박영훈, 최철한, 송태곤이 살아남았는데 이들은 공교롭게도 신4천왕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터였다. 중국은 왕레이(王磊), 저우허양(周鶴洋), 구리(古力), 왕시(王激)의 4명이 올라갔다. 일본세는 전멸이었고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이창호는 후야오위에게 꺾였다. 소개하는 바둑은 이세돌과 왕레이의 대국보. 왕레이는 1977년생. 6소룡의 일원으로 촉망받은 바 있으며 2003년에는 삼성화재배 결승까지 올라갔다가 조훈현에게 2 대 0으로 패하여 준우승에 그친 경력을 지녔다. 이세돌보다 6년 연상인 왕레이는 어렸을 때부터 진지한 대국자세로 이름이 난 기사였다. 대국을 하는 동안 거의 소리를 내지 않을 정도로 신중하고 냉정한 것이 그의 태도였다. 기풍은 실리파이면서 접근전과 변환술에 강하여 한국형이라는 비평을 들었다. 검토실에는 조훈현 9단이 일찌감치 나와 앉아있었다. 본선 2회전에서 구리에게 패하여 물러난 그는 한국기원의 해설 청탁을 받고 있었다. “왕레이가 먼저 취향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조훈현) 흑7로 걸쳐간 수를 보고 한 말이었다. 보통은 참고도의 흑1로 굳히는 것인데 지금의 배석상황이라면 이창호의 애용형인 백2의 유장한 벌림이 예상된다. 왕레이는 그것이 싫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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