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책조율이 안된다고 해서 IMF환란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경제부총리제도를 부활하는 것은 시대역행적 처사이다. 국민의 정부는 출범직후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환란을 자초한 재정경제원을 사실상 해산하고 기획예산처, 금융감독위원회, 재정경제부 등으로 권한을 분산했다. 민주적 시장경제의 창달을 위해서 관치경제체제를 타파하고 작은 정부를 실현한다는 논리였다. 그로부터 2년도 안되어 이제 정부는 다시금 경제부총리제도를 부활하겠다고 나왔다.김영삼정부때 만들어진 재정경제원은 당시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합친 것으로 정부조직을 축소하기위한 조치로 취해졌다. 그러나 숫자만 축소되었지 힘이 더 커진 것이 문제였다. 재정경제원이 유일한 경제권력부처로 부상하면서 관치경제체제가 강화되고 관료들의 보신주의가 만연했다. 97년 한보, 삼미, 진로, 대농, 기아등 대형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나서 경제가 부도상태로 치닫는데 재정경제원은 시장기능에 의한 산업구조조정이라는 억지해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위해 외환보유액을 속여 발표했다. 침몰하는 배위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는 자멸적 관료주의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이후 결국 우리경제는 IMF관리체제에 들어가고 국민들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관료주의의 극단적 폐해를 경험한 우리경제에 부총리제도를 부활하겠다는 것은 수렁을 빠져나온 경제를 다시 수렁으로 밀어넣는 퇴행적 사고이다. 실제로 경제부총리제도를 신설하면 예산, 금융, 조세 3권을 장악하는 권력집중현상이 나타나면서 과거의 비리유발적 관치제도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정책조율은 경제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위한 관치의 조율로 변한다.
현재 경제정책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시장기능의 자율화가 미흡한 상태에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제부처들의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즉 부처간 정책의 혼선이 아니라 힘의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상태에서 우리경제에 필요한 조치는 첫째, 과감한 규제혁파와 자율화로 경제부처의 기능을 축소하고 시장기능중심의 분권적 경제운영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둘째, 부처간에 업무영역과 권한을 명확히 규정하여 정책수립과 집행에 있어 갈등의 소지를 배제하는 것이다. 셋째, 대통령이 지도력과 통제력을 발휘하면서 불가피한 경우 청와대가 정책을 조율하는 일사불란한 정책운영 질서를 정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시장기능이 경제를 이끌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형태로 구도를 바꿔야 한다.
경제발전초기에 정부의 역할은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시장기능이 작동하면 정부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축소해야 한다. 이를 거부할 경우 경제는 관료주의 덫에 걸려 비리와 부정부패로 병이 든다. 경제발전 초기에 정부는 천사의 손이나 나중에는 시장경제의 숨을 막는 악마의 손으로 변한다. IMF 국난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배운 이 교훈을 잊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관료집단과 이해관계자들의 기득권 회복을 위한 획책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