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숭배받던 곰, 왜 악마로 조롱받았을까

■ 곰, 몰락한 왕의 역사

미셸 파스투로 지음, 오롯 펴냄

13세기 이전 유럽에선 힘·용기·관대함 상징 '동물의 왕' 자리 올라

"이교도 개종막는 방해물" 중세 기독교서 위상 격하… 그 자리에 사자 앉혀



'백수의 왕' 사자. 하지만 흔한 다큐멘터리를 봐도 사냥기술은 하이에나보다 떨어지고, 힘이나 이는 하마보다 못하다는 평가다. 간간이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을 가정하는 얘기도 나오지만 절대 우위를 평가받지는 못한다. 싸움터가 초원이냐 산지냐에 따라 전세는 얼마든지 역전된다. 게다가 한때 아프리카와 유럽·아시아까지 서식했다지만, 이제는 사하라사막 남쪽 일부 정도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고의 맹수하면 사자다.

하지만 13세기 이전 유럽에서 사자는 왕이 아니었다. '백수의 왕'으로서 힘과 용기·관대함 등 왕의 덕목을 지닌 최고의 존재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에 대해 이 책의 저자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중세사 연구자인 미셀 파스투로는 과대 포장된 사자의 위상이 일정 부분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말한다. 고대 유럽의 전설·신화·민담 등 상징체계를 살펴보면 오히려 곰이 많은 지역에서 숲의 주인이자 힘과 용기의 상징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사자를 왕좌에 앉힌 것은 바로 중세 기독교였다고 지적한다.


곰은 유럽과 아시아 할 것 없이 북반구 많은 지역에서, 특히 게르만족·켈트족·슬라브족에게 수천년간 동물의 왕으로 숭배됐다. 오늘날에도 일본의 아이누인, 시베리아의 원주민, 스칸디나비아의 라플란드인, 캐나다·그린란드의 이누이트 등에겐 곰 숭배의 전통이 남아있다. 곰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상징이고, 그녀의 이름도 곰을 나타내는 인도유럽어가 어원이다. 흔히 이상향을 가리키는 '아르카디아'의 뜻도 '곰들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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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사들에게는 무기와 방패, 종족의 문양에 새겨넣고 싶었던 힘과 용기의 상징이었다. 심지어 야수와 같은 용맹스런 존재가 되기 위해 곰의 피를 마시고 그것으로 목욕했다는 전설까지 남아있을 정도다. 게르만 전설인 '니벨룽의 노래'에서 용의 피에 목욕해 무적의 몸을 얻는 지크프리드처럼. 곰의 고기를 먹는 것은 불경한 일이었고 심지어 '곰'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꺼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렇게 깊이 뿌리내린 곰에 대한 숭배와 경외감은 중세 교회에게 이교도의 개종을 막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게르만족에게 무적의 동물이자 야성적인 힘의 화신, 이승과 저승을 잇는 중간자, 동물과 인간 세계 사이에 자리 잡은 특별한 존재, 심지어 인간의 조상이나 동족으로까지 믿어지는 곰은 금기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저자가 말하듯 당연히 교회는 곰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곰을 왕좌와 제단에서 끌어내려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먼저 군대까지 동원하며 몰이사냥과 대량학살로 곰 자체를 없애고, 사로잡은 곰은 거의 '가축화한' 동물로 묘사해 위상을 끌어내렸다. 7~8세기부터는 기독교 성인들의 이야기에 곰을 길들이는 이야기를 집어넣고, 9월과 11~12월에 집중된 곰을 숭배하는 의식을 성인 축일로 대체해나간다. 한편으로는 '곰은 악마'(성 아우구스티누스)라고 규정하며 모욕하고 조롱했다.

이러한 노력은 11세기 무렵부터 실질적인 결실을 맺는다. 13세기에 이르면 곰은 그저 사슴이나 멧돼지 같은 덩치 큰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 무렵 성직자들이 지은 것으로 보이는 동물우화집 '여우이야기'가 바로 급전직하한 곰의 위상을 방증한다. 이제 그 자리에 사자가 올라탄다. 과거 선과 악의 상징이 혼재됐던 사자는 '레오파르두스'라는 이름으로 악한 이미지를 분리해내면서까지 그 자리를 다진다. 그리고 그 다음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2만3,000원.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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