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출범의 4대 선결조건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의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가 쌀, 쇠고기, 자동차, 방송ㆍ통신 시장 개방 문제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양국간 FTA 협상의 숨은 ‘딜 브레이커’(협상결렬 요인)로 남겨져 있다.
미국 측의 줄기찬 요구로 한미 FTA 협상 출범 전 정부는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단축하기로 하고 지난해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미 한 번 양보한 스크린쿼터는 그러나 미 측이 ‘확인사살’에 나서면서 26일 장관급 끝내기 협상을 앞두고도 서비스분과의 미해결 과제 중 하나로 남아 대통령 수준의 최고위급 결단만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협정문에 스크린쿼터를 ‘현재유보’로 명시해 장래에도 국산영화 의무상영일수를 다시 늘리지 못하도록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현재유보가 될 경우 국산영화가 시장에서 참패를 면치 못해도 우리나라는 스크린쿼터를 늘려 ‘한국영화 부활’을 시도할 수 없고 현행 73일에서 추가 축소만이 가능할 뿐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국영화의 미래 불확실성을 감안, ‘미래유보’로 해 스크린쿼터를 원상 회복하거나 더 늘릴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싶어한다.
서비스분과장인 김영모 재정경제부 통상조정과장은 마지막 서비스분과 회의가 열린 지난 22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스크린쿼터의 현재유보와 미래유보를 놓고 양측의 대립각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며 “스크린쿼터 문제는 장관급 최종 협상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해 관계장관회의에서 최종 협의, 협상에 임할 계획이지만 사실상 ‘양보냐, 협상 결렬이냐’를 놓고 대통령의 결심만이 남아 있는 단계라는 게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인 출신인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미 정부의 신뢰와 한미 FTA 협상 타결을 위해 스크린쿼터의 현재유보에 적극적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등 경제관료들의 견제를 얼마나 뚫고 노 대통령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역시 관심의 대상이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스크린쿼터를 (현재유보로 해) 내주면 향후 국내 영화산업이 침체될 경우 그 비난이 모두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쏠릴 수 있지만 미국이 ‘스크린쿼터 축소 약속을 분명히 지킬 의지를 보이라’며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로 나와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