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ㆍ슬로베니아 은행들이 보유한 부실채권이 올해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동유럽 국가가 키프로스에 이어 다음 구제금융 신청국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보고서를 인용해 헝가리와 슬로베니아 은행들의 부실채권 규모가 20%에 근접하거나 이를 웃돈 상태이며 올해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S&P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계열의 라이파이센은행과 에르스테그룹은행,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디트은행 등 동유럽에 진출한 서유럽 은행들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의 영향을 억제하기 위해 자본 및 유동성을 줄이면서 동유럽 기업과 가계에 대한 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서유럽 은행들은 동유럽 전체 은행 자산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S&P 관계자는 "과거 여러 차례 슬로베니아와 헝가리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지만 여전히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추가로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앞서 S&P는 21일 헝가리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해 향후 등급강등 가능성을 시사했다. 신용등급은 투기등급인 기존 'BB'를 유지했다.
특히 유로존 국가인 슬로베니아의 구제금융 신청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주 슬로베니아가 올해 은행권에 10억유로의 신규 자본을 투입하는 것을 비롯해 약 30억유로의 자금을 조달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S&P는 "슬로베니아 정부가 국영은행들을 지원하면서 부채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내렸다. 슬로베니아 최대 은행인 노바류블랸스카는 지난해 2억7,500만유로의 손실을 내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다른 은행들의 실적도 비슷한 상황이다.
여기에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6일 구제금융 국가의 은행부실 해결과정에서 고액예금자와 선순위 채권자들에게도 손실을 분담(bail-in)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슬로베니아의 구제금융 신청 및 은행 고액예금자들의 손실분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인 예룬 데이셀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도 25일 "키프로스에 적용된 조건은 비슷한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 국가들에도 문제해결의 '원형'이 될 것"이라면서 키프로스처럼 은행의 비중이 과도한 룩셈부르크ㆍ몰타와 부실은행 문제가 심각한 슬로베니아에 대해 "은행의 자본규모를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안정세를 보이던 슬로베니아의 15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22일 6.416%까지 치솟아 올해 최고치(국채 가격 하락)를 기록한 데 이어 26일에도 6.383%까지 상승했다. 헝가리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도 키프로스 구제금융 소식이 전해진 후 6.5%대를 오르내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마르코 크라니예크 슬로베니아 중앙은행 총재는 18일 "슬로베니아는 구제금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는 슬로베니아 은행들의 자산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135%에 불과해 800%에 달하는 키프로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