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잠정 결론을 낸 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두산은 발행분(5억달러)만큼 부채가 늘어나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신용평가에도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 영구채 발행을 준비하던 다른 기업들의 자본조달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반대로 자본으로 인정받는다면 회계기준원에 해석을 의뢰한 금융위원회로서는 쓸데없이 긁어 부스럼을 만든 꼴이다. 이도 저도 시장과 투자자의 혼란과 혼선은 마찬가지다.
영구채는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을 띠는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채권)으로 부채지만 발행자의 명시적 상환의무가 없다는 측면에서 국제회계기준(IFRS)상 자본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두산의 이번 영구채는 구체적인 발행조건이 채권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두산 영구채가 보완자본의 일종인 후순위채권이 아닌 선순위채권이고 5년 뒤 콜옵션(상환)을 행사하지 않으면 이자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구조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구해 2개월 동안 충분히 검토했다지만 논란을 빚은 1차적 책임이 무겁다. 사안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국내 기업의 영구채 발행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애초부터 자본이냐 부채냐를 명확히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더욱이 금감원은 발행사인 두산, 주간사인 산업은행으로부터 공식적인 질의회신 방식도 아니고 실무진의 구두협의 형식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자본과 채권의 구분조차 어려울 정도로 첨단 금융시장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밀실의 후진적 관행은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공식적 해석기관인 한국회계기준원과 긴밀한 협의를 거쳤는지도 의문스럽다.
제2의 두산 영구채 사건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자본시장의 진전과 금융상품의 혁신으로 자본과 채권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채권 발행은 더욱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이번에 금융당국들이 확고한 기준을 확립하지 않으면 피해는 시장과 투자자에게 전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