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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DNA’로 공직 철밥통을 깬다. 모 일간지 1면에 나온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에 대한 헤드라인이다. 삼성 유전자는 학력철폐, 성과주의 평가, 수평적 직급체계 등으로 대표된다고 기사가 시작된다. 학력철폐, 성과주의 평가, 수평적 직급체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방향이고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계급장 떼고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실적만이 최고이고 결과적으로 기업주에게 충성하는 것 외에는 예외 없다는 기준이기도 하다. 학력철폐는 학력차별을 없앤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을 무한경쟁으로 이끌어내는 유인책이기도 하고 한두 명의 상징성 있는 인물을 내세워 조직 전체를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는 효율성을 제일가치로 하는 최적화된 제도이고, 당연히 성과주의와 수평적 직급체계도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이미 행정개혁은 역대정권마다 다양한 용어를 붙여 단행해왔고 제도적으로도 김영삼 정부의 행정쇄신위원회부터 시작해서 유사한 기구들이 만들어져 왔다. 급기야 김대중 정부에서는 신자유주의 입장에서 신공공관리론이 유행처럼 외환위기 극복방안으로 처방되면서 민영화의 광풍이 불어왔다. 그 시절에는 모든 공기업에 대해 민영화가 하나의 대세처럼 군림했었는데, 각 공기업마다 설립목적이 있고 그에 따라 개별적 처방이 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영화의 대세 속에서 마녀사냥식 몰아가기 처방이 일방적으로 내려졌다. 만약 한국통신을 민영화하지 않고 공영성을 유지한 채 이동통신시장이 활성화했다면, 통신비가 가계지출비중에서 이토록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든다. OECD 국가들의 통신비 지출에서 우리나라의 통신비가 3배 정도 높고, 이런저런 이유로 평균 7~8만 원짜리 통신상품을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까 4인 기준 월 32만원이면 가구당 1년에 대략 400만 원 이상 통신비를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국가발전과 국민의 삶에 질에 민영화만이 정답이었을까? 이러한 추세와 논거는 지금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면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22개 중앙부처로 조직된 행정부공무원노동조합의 지부 중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소속 우정사업본부가 있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형식적인 신분은 공무원이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각자의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에서 봉급이 지출되고 있고, 심지어 상당한 액수를 정부예산에 보태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우정사업본부가 경영합리화라는 이유로 최소한 25년 전부터 민영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책임경영평가를 내세우면서 구성원들의 활동단위별 원가까지도 성과평가로 계산할 수 있는 국책연구과제들이 20년 전부터 시작되어 왔다. 이미 1990년대에 우체국의 보편적 서비스는 뒤로하고 효과성 보다는 효율성을 제일가치로 삼아야한다고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보고서들에서도 대놓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3인 우체국을 1인 파출소와 비교하면서 1인 우체국화하려고 한다. 파출소는 일종의 거점이고 우체국은 상시적으로 들어오는 고객을 맞이하는 조직인데도, 이런 차이점이 경영과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철저히 무시되기 일쑤다. 점심시간은 물론이고 중병에 걸려서 쉬어야 하는 직원이 생길 경우에 업무량이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상식적으로 돌아가자. 행정에는 가외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행정은 보편성과 항시성으로 365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늘 예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딱 맞춰 놓았는데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을 때, 대체할 수 있는 여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에서는 가외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인 땜질 혹은 땜방을 하고 그 시기를 지나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행정은 책임을 져야 한다. 경영의 눈에서 보면 비효율이지만 행정의 눈에서 보면 책임이다.
올해 초 전 중앙부처 41개 기관을 안전행정부가 조직진단을 마쳤다고 한다. 19일 취임한 삼성DNA를 가진 인사혁신처장이 이 조직진단을 어떻게 활용하지 벌써부터 두려움이 앞선다. 우정사업본부 공무원들은 명예퇴직자가 1400명이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충원은 미미하다고 한다.
조합원들이 이럴 바에는 차라리 민영화를 했으면 한다고 한다. 혁신이 나올 때마다 지난 30년 내내 위기론 속에서 봉급도 신분도 말 그대로 특별히 차별받는 공무원이었기에, 이번 혁신에서는 또 어떤 숨 가쁨이 일어날까 걱정부터 앞선다고 한다. 혁신을 내세워 공무원들에 대한 미운털을 이용해서 공공부문을 옥죄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결국 국민들이 피해보는 일들이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 많은 제약조건에 놓인 공무원들의 들리지 않는 외침을 묵살하면서 얼마나 자행이 될지 벌써부터 두렵다. /구문회 행정부공무원노동조합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