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송병락 서울대교수 본지초청 특강

『경제는 인치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서울대 송병락교수(경제학)는 13일 오전 한국일보사 본관강당에서 열린 서울경제신문 초청특강에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정책방향」이란 주제의 특강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宋교수는 이날 특강에서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퇴출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에너지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宋교수는 한국과 미국, 일본의 경제체제를 비교하면서 『금융과 실물의 두 가지 경제 축을 고르게 발전시켜야 경제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宋교수의 특강내용의 요약.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미국식 모델이 대거 유입되면서 우리들을 얼빠지게 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미국식 모델에도 한계가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기업이 경쟁을 하면 일본이 이긴다는 농담이 있다. 미국 기업들이 돈을 벌어 변호사들에게 받치고 있음을 빗댄 말이다. GM의 경우 300명의 변호사를 먹여 살린다. 모빌은 무려 500여명의 변호사를 거느리고 있다. 아시아는 1700년대까지만 해도 서양을 앞서는 경제력을 갖고 있었다. 인쇄기술이나 종이·성냥·우산·지폐 등 세계 문명을 뒤바꾼 기술은 모두 아시아에서 나왔다. 그러나 1700년대를 고비로 아시아는 서양에 추월당했다. 시카고대의 로버트 포겔교수는 서양이 동아시아를 앞선 것은 「주식회사 제도」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먼저 도입했다는 점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에서는 정부의 경제조직보다 기업이 먼저 생겼다. 미국의 기업들이 1800년대부터 이미 대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반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913년에야 창립됐다. 정부 설립 이전의 경제 시스템이 「야생 자본주의」였다면 「정부가 길들이는 자본주의」를 지나 이제는 「시장이 정부를 앞서는 자본주의」의 단계에 와 있다. 피터 드러커교수는 『정치나 정부가 기업에 공갈과 협박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중국에는 6,000개의 시멘트공장이 있는데 이 중에서 국제규격을 받은 공장은 단 1개 뿐이다. 중국은 자전거의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지만 자전거 수출은 못한다. 러시아의 객실 5,000개짜리 매머드호텔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 나라에선 효율성의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생산능력 과잉시대의 기업들은 「비교우위」에서 「경쟁우위」로 옮겨가는 상황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의 경우 수요에 비해 40%나 공급능력이 넘치고 석유화학은 두배나 과잉투자되었다고 분석한다. 이대로라면 세계의 자동차공장 860개 가운데 2000년까지 90개가 문을 닫을 전망이다. 철강은 50%, 컴퓨터는 140%나 과잉투자되어 있다. 일본에는 국가대표 기업 73개가 있다. 일본의 게이레쓰(系列)는 선진국과의 경제전쟁을 위한 조직이다. 미쓰이물산이 894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미쓰비시상사도 611개, 이토추상사도 683개의 자회사 조직을 가지고 있다. 일본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은 많은 업체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어졌다. 11개 기업이 자동차사업에 진출해 혈전을 벌이고 있으며 오디오에는 25개사, 반도체도 24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스위스의 경우 시계브랜드는 350개, 은행은 무려 500여개에 이른다. 경쟁이 기업을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이다. 경제가 튼튼해지려면 금융과 실물의 두 바퀴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은행은 세계 제일의 정보산업이며 21세기 성장산업이다. 선진국은 금융산업이 강한 나라다. 후진국이 세계적인 은행없이 제조업만으로 떼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일본 미쓰이그룹의 경우 은행과 보험회사를 각각 두개씩 가지고 있다. 미쓰이의 핵심기업은 단연 사쿠라은행과 미쓰이물산이다. 이들 두 축이 도요타자동차와 도시바전기, 토레이섬유 등 제조업을 떠받치는 기반이다. 스위스의 은행 UBS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오는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국제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예견했다. UBS는 세가지 요인을 들었는데 튼튼한 가족제도, 높은 교육열, 억척스러운 기질 등이었다. 미국이 튼튼한 상층부(천재들)를 기반으로 선진국이 됐다면 독일은 중간층인 마이스터, 일본은 하층부(샐러리맨)를 바탕삼아 경제발전을 이루어냈다. 우리는 미국보다는 일본의 모델에 가깝다. 미국 경제가 발명과 신제품 개발을 통해 발전한 반면, 일본은 보다 잘 만드는 기술(프로세스 테크놀로지)로 미국을 추격해 왔다. 한국도 일본과 똑같은 양상이다. 우리 경제에 미국 기준을 억지로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많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식 사고가 우리 경제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IMF가 시작되자마자 『대기업의 시대는 끝났다』며 재벌을 해체하자더니, 이제는 『빅딜을 통해 대기업의 규모를 더욱 키워주자』는 식의 논리가 득세하고 있어 혼란스럽다. 이제는 시스템의 시대다. 1 더하기 1의 결과를 수십, 수백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시스템 에너지 즉, 시너지효과다. 미국의 기준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 보다는 우리 실정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보완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리=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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