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세 나라는 같은 동양문화권에 속한다. 그러나 경제문제를 푸는 정부의 접근방식은 크게 다르다.한국정부의 접근방식은 돌진형, 물불을 안가린다.
일본정부의 그것은 농성형, 나서서 깨부수고 뜯어 고치기보다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린다.
중국정부는 고 스톱형, 앞으로 나아가되 길이 막히면 돌아간다.
일본사람들은 합의를 존중한다. 관료들은 특히 더 그렇다. 합의가 안되면 될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서 금융부실문제의 해결을 미루어왔고 경기후퇴를 치유할 화끈한 대책도 세우지 않는다.
중국은 지금 국유은행과 국유기업의 구조개혁을 시급히 수행해야 하는 동시에 이 때문에 빚어지는 심각한 불경기와 실업증가 문제에도 대처해야 한다. 정반대로 내닫는 이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중국정부의 철학은 「강을 건너기에 앞서 디딜 돌을 먼저 살펴라」는 것이다.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 구조조정을 늦추고 실업문제가 완화되면 구조조정을 다그친다는 것이다.
얼마전 강봉균 재경부 장관은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 각계층의 인식이 지극히 이중적이라고 푸념했다. 총론은 찬성하는 것 같은데 각론엔 이러쿵저러쿵 반대한다는 것이다.
또 얼마전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씨는 한국정부가 재벌을 해체하는 등 경제를 결단내고 있다고 말했다. IMF와 일부 미 금융기관의 말을 너무 고분고분하게 잘 듣는다는 것이다.
이 오마에씨의 비판에 대해서 미 MIT교수인 돈부시씨가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런 헛된 말 들을 것 없이 한국은 지금의 개혁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라는 것이다.
오마에씨와 돈부시 교수의 훈수 중 어느것이 옳은 훈수인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은 남의 훈수를 안 듣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일본도 남의 훈수를 잘 듣기보다는 잘 안 듣는 쪽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남의 훈수를 잘 들어왔다. 남의 훈수를 대의명분으로 삼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런 판에 훈수가 정반대로 엇갈리니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막중한 경제개혁을 남의 훈수대로 하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형편이 저마다 다르고 우리는 우리 형편대로 개혁을 밀고 나갈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나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