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빈민 구제 외치던 MFI, 빈민 울리는 고리업체로 전락하나

'MFI 효시' 그라민銀총재 횡령… 인도선 대출회수 어려워 재정난<br>일부 대출 금리 무려 120% 달해… 강제 상환 압박 못이겨 자살까지<br>각국 금리상한등 규제 나섰지만… 채무자들 연쇄 디폴트 가능성도

무하마드 유누스가 1976년 설립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 본사 건물.

이달 초,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사오보에 대한 노벨평화상 시상을 앞두고 한창 분주하던 노르웨이 노벨평화위원회는 비보를 접했다. 불과 4년 전 빈민구제 활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가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횡령 혐의로 본격적인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노벨위원회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게 됐다. 무하마드 유누스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 준 그라민은행은 일명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으로 불리는 소액신용대출 전문은행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미소금융'전문 은행쯤 되는 셈이다. 제도 금융권에서 소외된 사회적 취약계층이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무담보 소액대출을 제공하는 '마이크로 파이낸스(MFI)'의 효시 격으로 각광을 받아 왔다. 하지만 '빈곤층의 보호자'역할을 자처했던 유누스와 그라민은행의 횡령과 은행의 불투명한 자금운용 혐의는 그 동안 암암리에 쌓여 왔던 MFI의 어두운 면을 한꺼번에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됐다. 약자와 빈민을 돕는다는 취지에도 불구 점차 고금리로 변모해 고리대금업체들과 차별성을 잃고 있는데다 강제 상환으로 이용자들이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르는 등 MFI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채 상환도 미미한 수준으로 은행 기능을 유지하기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MFI의 빛과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그라민은행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누스가 설립한 그라민은행은 1970년대 인구 80%가 가난에 시달렸던 방글라데시의 빈민 인구를 현재 38%까지 줄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976년 "신용은 가난한 사람들도 누려야 할 인권"이라며 시골마을 주민에게 무담보에 10~20%의 저금리로 소액 대출사업을 벌이기 시작한 그는 79년까지 500가구를 절대 빈곤에서 구해냈으며, 그라민은행 덕에 지난 2006년까지 빈곤을 벗어난 방글라데시 국민은 400만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라민은행을 2,185개 지점, 1만8,151명의 직원, 재정자립도 100% 흑자경영을 실현한 초대형 은행으로 발전시키며 중국ㆍ인도 등 주변국들에게 이 같은 운동을 전파한 유누스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최근 덴마크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톰 헤이네만에 의해 석연찮은 돈 거래가 발견됐다. 헤이네만은 노르웨이 정부가 그라민 은행에 보낸 구호기금 가운데 1억 달러를 유누스와 그의 측근이 빼돌린 자료를 봤다고 주장했다.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도 유누스가 탈세를 위해 이 같은 거래를 했다며 MFI 산업이 "가난한 이들로부터 피를 빨아먹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라민은행 측은 유누스나 은행 이사회가 어떤 부정도 저지르지 않았다며 모든 혐의를 '날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사건은 MFI 산업을 도마 위로 올리며 MFI의 온갖 부작용과 폐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실제로 MFI로 시끄러운 곳은 방글라데시 뿐만이 아니다. MFI 시장이 급팽창하는 인도의 경우 MFI 대출의 30%가 몰려 있는 안드라프라데시 주에서 대출자들의 자살이 50건을 웃돈 데다 그 대부분이 생활고에 찌든 여성들이라는 점이 큰 사회적 문제로 비화했다. 인도 MFI 시장은 지난 2005년 2억5,2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5억 달러로 4년 만에 무려 10배나 불어난 상태다. 하지만 인도 평균 이자가 연간 35%를 넘어 고리대금 업체들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정부 보조나 해외보조금을 받지 않는 인도 시골의 MFI 금리가 무려 60~12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빈곤층에게 신용대출의 길을 열어주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대출회수의 어려움 때문에 발생하는 재정 문제는 결국 고금리를 초래하면서 빈곤층을 더 심각한 빚더미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인도 MFI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대형 MFI인 SKS다. 당초 비수익 단체로 출발한 SKS는 빈민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아 지난 2003년 100만개에 불과했던 대출계좌가 지난해 267만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사업이 비대해지면서 재정 등의 문제점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SKS는 최근에 아예 영리단체로 전환하고 기업공개(IPO)를 단행, 3억5,800만달러의 자금을 유치했다. 이 과정에서 SKS 설립자 비크람 아쿨라는 주식 매도차액으로 1,300만 달러를 챙기는 등 극빈자를 위한 은행이 결국 이익추구 산업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각종 비리와 피해가 확산되자 정부 차원에서도 MFI를 바짝 죄기 시작했다. 인도 정부는 대출 회수주기를 주간에서 월간에서 바꾸도록 명령하고 이달 초에는 금리 상한선을 24%로 못박았다. 고압적인 수단을 사용해 원리금을 회수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방글라데시 정부도 지난달 20~50%에 달하는 금리가 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지적에 금리 상한선을 27%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는 MFI 산업을 빠르게 위축시키면서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260개 MFI 중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60~70 개사가 수개월 내에 파산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출 회수율이 감소하고 리스크 회피를 위해 은행 대출이 축소됐기 때문이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고문 리나에 탄출링은 "인도 당국의 규제로 소액 대출이 급감하고 다중 채무를 안고 있는 채무자들이 연쇄적으로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빈민 구제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MFI가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아직은 현실의 무게가 MFI의 이상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장하준 교수는 저서를 통해 "MFI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사업"이라며 정부가 주체가 되든 금융기관이 주체가 되든 현실성이 떨어지는 비교적 저렴한 사채로 "위대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장교수는 돈을 빌려주기 보다는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FT는 최근 사설과 칼럼을 통해 "MFI는 여전히 세계의 빈곤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는 대책으로 가난한 자를 위한 상업적 접근은 계속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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