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O 운영권 매입" 오일달러 투입도<br>"GTO 덩치 키워 화물유치 협상력 더 높이자" <br>'유럽 항만터미널 대명사' ECT 대주주는 홍콩社<br>"우리 항만, 지금같은 인프라만으론 경쟁서 낙오"
| 네덜란드 마스강 하구 부근에 들어선 로테르담 항만의 전경. 세계 항만업계에 항만 터미널을 서로 확보하려는 인수합병의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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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허브 해답 해외서 찾아라] 세계는 항만터미널 확보 전쟁중
"GTO 운영권 매입" 오일달러 투입도"GTO 덩치 키워 화물유치 협상력 더 높이자" '유럽 항만터미널 대명사' ECT 대주주는 홍콩社"우리 항만, 지금같은 인프라만으론 경쟁서 낙오"
로테르담=오현환 기자 hhoh@sed.co.kr
네덜란드 마스강 하구 부근에 들어선 로테르담 항만의 전경. 세계 항만업계에 항만 터미널을 서로 확보하려는 인수합병의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세계의 화물이 유럽으로, 유럽의 화물은 세계로 흘러가는 유럽의 관문 로테르담항. 로테르담항내에서도 무인 자동 하역시스템을 갖춘 최신 터미널 ECT(Europe Container Terminals)를 찾았다.
ECT가 처리하는 물동량은 연간 500만~600만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나타내는 도량형). 로테르담 항만 전체의 컨테이너 처리량의 거의 4분의3을 커버하는 최대 항만이다. ECT 중역 울코 H. 보테마씨는 "터미널로 들어오는 화물 중 36%는 유럽대륙을 가로 지르는 라인강ㆍ마스강의 바지선으로, 51%는 철로를, 13%는 도로를 통해 수송된다"고 설명했다.
화물을 시간과 비용 등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보낼 수 있는 천혜의 물류허브다. ECT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국내는 대부분 도로를, 인근 국가로는 피더선(Feeder)만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리 물류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화물차가 컨테이너 2개를 수송할 수 있다면 철도는 100개, 수운은 500개, 해운은 5,000개까지 나를 수 있어 개당 운송단가가 떨어지고 효율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기자는 유럽 항만터미널의 대명사인 ECT를 운영하는 곳이 홍콩의 허치슨포트홀딩스(HPH)라는 데 대해 한번 더 놀랐다. 울코 H. 보테마씨는 "ECT 지분 중 98%가 허치슨포트홀딩스(HPH)가 갖고 있다"고 말했다.
HPH는 ECT 뿐만 아니라 극동,동남아,유럽,중동 등 전세계 20개국에 42개의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항만터미널 운영업체(GTO)다. 이들은 투자 리스크를 분산하고 네트워크 파워를 이용해 정기선사와의 협상력을 높여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항만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시장에서 더 많은 터미널을 확보하려는 인수합병의 불이 당겨지고 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 허브를 추격해오는 말레이시아의 위협에 대응, 국가 주도로 세계 터미널 운영권 사냥에 나서고 있다. 두바이의 DP월드는 유가급등으로 쏟아지는 오일달러를 기반으로 아예 덩치가 큰 GTO 운영권을 잇따라 사들이고 있다.
HPH는 최근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활용, 상하이 신항 양산항 2단계 터미널 사업권을 확보했다. 지난 4월에는 HPH 전체 지분의 20%를 싱가포르의 글로벌 터미널 운영회사(GTO)인 PSA에 넘기기도 했다.
DP월드는 지난 2004년 미국계 GTO로 전세계에 10개 터미널을 보유한 CSXWT를 인수한데 이어 올해 2월에는 세계 4위의 GTO인 영국계 P&O포트를 68억달러에 인수해 총 45개 터미널을 확보, 터미널 수 기준으로 정상에 올라섰다. P&O는 미국에서도 터미널을 보유 DP월드의 인수를 둘러싸고 미국 의회에서 허용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중국의 양대 글로벌 해운사인 COSCO와 차이나 쉬핑(CSCL)도 자국내 주요 터미널은 물론, 전세계의 차세대 물류거점이 될 주요 터미널을 사들이고 있다.
전문 항만 터미널 운영업체의 글로벌 네트워킹체제가 세계 항만산업의 대추세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항만간의 경쟁도 종래의 하드웨어 확충 경쟁에서 항만간 네트워크 구축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2개국 이상에 터미널을 운영하는 GTO들이 지난 2004년 기준으로 세계 컨테이너 터미널 시설능력의 57%를 확보,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60%를 처리했다. 이 중 상위 5대 GTO('04기준)의 컨테이너 처리량은 2002년 9,760만개에서 2004년에 1억4,800만개로 급증했고 시장 점유율도 35.4%에서 41.3%로 증가했다.
이처럼 GTO간의 치열한 M&A는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주요 지역 터미널을 확보할 경우 선사든, 화주든 이들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세계 성장지역을 중심으로 터미널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고 선사들이 초대형선 투입을 늘리면서 이를 수용할 대형 터미널도 부족한 데 따라 수요초과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항만 터미널 운영 업체들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해외에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원양해운사인 한진해운(9개)과 현대상선(3개)뿐이며 이들은 터미널 운영 자체에는 별 관심도 없다. 국내에는 이들 외에 대한통운, 주한진, 동부, 세방 등 중견ㆍ중소업체들만 난립해 있지만 글로벌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한다. 현대상선 로테르담 지사 하현규 차장은 "액티브 하지 않는 유럽과 달리 동북아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창의적이지 않고 모방에만 그친다면 말로만 동북아 허브가 불가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 터미널 시장의 지각변동은 우리 항만이 우리 항만의 인프라와 물류체계만으로는 더 이상 화물유치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단기적으로는 중국 항만과 물류시장에, 중장기적으로는 극동러시아, 인도, 메콩강 유역 시장을 개척하고 직접투자를 확대해 이들 지역과 동북아를 연결하는 우리항만 중심의 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국계 GTO를 출현시키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또 이를 위해 갈 곳을 못 찾고 있는 유동자금과 공공기금이 더 많은 이윤이 기대되는 이쪽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작업도 시급하다.
우종균 KMI 책임연구원은 "해외 항만과 물류에 적극 투자해 거점을 선점하고 안정적인 물류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항만과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첩경"이라며 "기업도, 정부도 시장변화를 읽고 해외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세계 해운업계도 '몸집 불리기' 가속
선박 이어 해운사 제휴도 초대형화…국내선사들 글로벌 역량강화 시급
로테르담 항구에 정박 중인 머스크 시랜드사의 초대형 선박은 지난해 세계 해운업계에 회오리 바람을 불러 일으킨 인수ㆍ합병의 충격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이 회사가 세계 5위의 해운사와 합병하면서 해운사간의 연쇄 인수합병, 정기선을 공동 운영하는 얼라이언스간의 제휴로 초대형 얼라이언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난해 5월 덴마크의 머스크 시랜드사는 세계 최대 해운사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5위 선사인 네덜란드의 P&O 네들로이드를 합병했다. 선복량(선박이 실을 수 있는 용량)을 합하면 총 159만TEU. 사상 처음 한 컨테이너 선사의 선복량이 100만TEU를 돌파, '메가 케리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초대형 선사는 규모의 경제를 활용, 더 싼 요금으로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춘다. 때문에 이들의 합병은 경쟁이 매우 치열한 해운시장에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뒤이어 지난해 8월 세계 13위의 하팍 로이드(독일) 모회사 TUI AG가 20억달러의 현금을 들여 세계 16위의 CP쉽스(케나다)를 인수하는데 합의했다. 이들 선사의 합병으로 세계 5위의 선사가 탄생했다.
한 달 뒤에는 세계 4위의 선사인 프랑스 CMA CGM가 역시 프랑스 선사인 델마스를 합병, 대만의 에버그린을 제치고 3위로 뛰어 올랐다.
초대형 선사의 탄생은 정기선을 공동 운영하는 해운 얼라이언스에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지난해 10월 그랜드 얼라이언스(Grand Alliane)와 현대상선이 소속돼 있는 뉴월드 얼라이언스 (New World Alliance)가 전략적 제휴에 합의, 세계 최대 규모의 얼라이언스가 탄생된 것이다. 이전 제휴로 GAㆍNWA 그룹은 선박 725척, 선복량 213만 TEU(세계 총 선복량의 25.3%)를 갖춰, 한진해운이 포함돼 있는 CKYH 얼라이언스와, 독립선사인 머스크 시랜드까지 제치고 세계 최대의 제휴그룹으로 부상했다.
글로벌 항만터미널업계나 글로벌 물류업계 뿐만 아니라 글로벌 해운업계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통한 효율성 증대, 경쟁력 강화를 겨냥한 몸집 불리기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해운 업계에서는 선사의 초대형화와 함께 선박의 초대형화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한 번 수송에서 더 많은 물량을 나를 경우 기름값을 감안해도 단위당 수송비가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05년 4월을 기준으로 8,000 TEU급 이상의 초대형 선박이 150여척이나 발주돼 있다. 이 중 9,000 TEU이상 선박이 34척, 1만 TEU급 선박은 8척이나 된다. 2006~2007년에 1만2,500 TEU급 선박이 발주되고 2015년께에는 1만5,000 TEU급이 취항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8,000TEU급 선박은 지난 2003년에 처음 상업운항을 시작했으며 금년에는 1만TEU급 선박이 인도될 예정이다.
세계 해운업계에서 한진해운은 7위, 현대상선은 19위로, 우리나라 선사의 입지가 낮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연합(EC)이 컨테이너선사들의 해운동맹을 경쟁법 적용 예외조항에서 삭제하는 법 개정안을 상정시키는 등 동맹 폐지를 강력히 추진, 선사의 초대형화가 더 가속도를 낼 전망이다. 국내 글로벌 해운업체와 정부의 적극적인 마인드와 긴밀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대상선 로테르담 지사의 하현규 차장은 "국가가 인위적으로 하기는 어렵지만 글로벌 플레이어가 탄생할 수 있도록 제도나 금융, 외교 등 각 부문에서 자연스럽고도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소견을 밝혔다.
입력시간 : 2006/08/02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