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10> 아빠에게도 ‘인간적인’ 추석이기를





얼마 전 TV 채널을 돌리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봤다. 한국 중년 남성들의 비애에 대해 다루는 토크쇼였다. 패널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년 배우, 예능인, 그리고 데이터 분석가와 의사. 인상 깊었던 부분은 팍팍한 사회생활 때문에 건조한 감성을 가진 것처럼 여겨지기 쉬운 중장년 남성들 역시 20~30대의 감성 못지않게 말랑말랑하고 여릴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상상력과 감성적 유연성을 위해 늘 소설을 읽는다는 어느 정치인 이야기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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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이 되면 중년 여성들 못지않게 남성들의 스트레스도 심하다고 한다.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가 어떠한지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루었으므로 조금 미뤄 두기로 하자. 이 글은 한국의 중년 남성들이 느끼는 명절 스트레스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해 보려고 한다. 일단 귀성을 하는 집의 가장이라면 운전대를 잡고 5~6시간 많게는 10시간 동안 가족의 안전과 편안함을 책임져야 한다. 중간중간 부인이나 자녀들과 번갈아 운전하기는 하지만 장시간 운전을 도맡는 건 대체로 아빠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제사를 지내고 난 후 형제, 남매가 모이면 자기 직장 일, 사회생활 속 푸념 섞인 대화가 오고 간다. ‘가족 간 비교’도 빠지지 않는다. 누구는 승진했고 누구 아들은 취직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남보다 내 조카, 내 동생과의 비교가 더 씁쓸한 법이다. 뼈가 부서져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가며 일하는데 가까운 주변의 누군가보다 ‘우리 집’이 처져있다는 생각에 일종의 서러움마저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훈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해도 모자랄 시간에 자기 삶의 불평을 공유하고, 적당한 타이밍이 되면 ‘집안 대소사’를 논하며 명절의 현실을 체감해야 하는 게 한국 중년 남성의 현주소다. 도대체 남자가 무슨 죄이길래 회사와 시장에서 겪는 ‘사회 피로’에 이어 ‘집안 피로’까지 느껴야 하는 걸까. 참 안타까운 일이다.

명절에 일이 바빠 집에 가지 못한다는 남성들의 사연을 좀 더 무겁게 느껴야 하는 이유도 이런 저변에 있지 않을까. 일단 회사의 사정이 급박해 출근해야만 하는 상황, 여유가 없어 반강제로 귀성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는 구슬프다. 그런데 집에 내려가면 다른 형제들과 비교될까봐, 또는 부담스런 노부모의 시선이 느껴져서 차라리 용돈 한번 부쳐 드리고 전화 한 통 넣는 게 오히려 속 편하다는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 안타깝기 짝이없는 현실이다.

올 추석은 중년 남성들에게도 인간적인 연휴가 되길 바란다. 고향에 가는 게 어렵다면 어쩌랴. 다만 여느 휴일처럼 안방에서 혼자 낮잠을 자거나, 대화 없이 TV만 보는 것은 금물이다. 그 대신 가족들이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시간을 내었으면 좋겠다. 하루는 아이가, 다른 하루는 부인이, 그리고 또 다른 하루는 친구들이 지친 아빠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식으로 말이다. ‘어른 남성’으로서 혼자 삭이며 혼자 다 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토닥여 주면서. 회사 역시 한몫 했으면 싶다. 휴가를 줬다가 빼앗거나 남은 휴가를 연휴에 이어 쓰려는 사람들을 도끼 눈 뜨고 쳐다보지 않는 것으로. 그나마 한해 몇 번 없는 중년 남성들이 숨 쉴 수 있는 추석 연휴다. 이런 노력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리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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