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토요 Watch] 넌 스펙 쌓니? 난 세상에 없는 향기 만들어

■ 숨은 스페셜리스트가 뜬다<br>색 만들어내는 컬러리스트<br>화장품 향기 디자인 조향사<br>커피·케이크 전문 빠띠스타<br>차·물맛 감별하는 소믈리에<br>자신만의 분야서 능력 발휘… 차세대 기업 인재로 떠올라







버건디ㆍ피코크블루ㆍ프러시안블루ㆍ크림슨레드ㆍ카민로즈ㆍ마젠타….

이들은 걸을 때도 먹을 때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컬러만 생각한다. 노란색을 보면 그 안에 숨은 수십가지의 노란색이 보인다. 색깔에도 명도와 채도에 따라 다양한 색상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노란색은 그냥 노란색이 아니며 파란색은 그저 파란색이 아니다. 수천가지 색상을 잘게 쪼개고 혼합하며 그 중 가장 적합한 색상을 찾아내는 색의 마술사, 패션계의 '컬러리스트' 얘기다.


미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제일모직 빈폴 R&D연구소의 컬러리스트 임소리씨는 "수백장의 명화를 보고 그림마다 지닌 고유한 색을 분류하는 트레이닝을 받는 것부터 시작했다"며 "미세한 색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을 깨우기 위해 배운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제일모직에서 일하는 컬러리스트는 임씨를 비롯해 10여명. 업계 관계자는 "억대 연봉자부터 고액의 주급을 받는 프리랜서까지 희귀한 분야인 만큼 능력을 충분히 인정 받는다"고 귀띔했다.

패션 컬러리스트는 다음 시즌에 유행할 트렌드를 분석하고 제품개발에 착수해 매장에 완성된 옷을 선보일 때까지 모든 부문에 개입한다. 이 과정에서 컬러리스트들은 해외 정보지나 유명 사이트 등에서 예측한 유행색상을 수집하고 패션강국이 몰려 있는 유럽을 찾아가 현지 분위기를 살펴보기도 한다. 1년 후에 유행할 색상 분석이 끝나면 브랜드와 조화를 이루며 어울릴 수 있는 특정한 색을 뽑아내는 작업을 거치게 된다. 임씨는 "유행색을 만들어내 히트하면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패션업계에는 컬러리스트만큼 생경한 업무를 담당하는 소재 디자이너도 있다. 이들은 트렌드를 한발 앞서 분석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디자이너들과 비슷하지만 옷의 실루엣ㆍ색상 등을 고려해 이를 직물 트렌드에 접목시키는 과정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특히 개발 소재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을 잡고 그에 맞는 원사를 발주하거나 새로운 원단이 탄생하면 자사 콘셉트에 맞는 직물을 고르고 주문하는 역할도 한다.

LG패션 관계자는 "옷이 완성됐을 때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소재와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질 높은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소재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최근 소비자들의 감성이 갈수록 고급화되면서 소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뷰티업계에서는 향을 디자인하는 '조향사'가 숨은 스페셜리스트로 꼽힌다.


아모레퍼시픽 향료연구팀은 화장품에 향기를 불어넣어 소비자의 후각을 사로잡는 일을 전담한다. 조향사의 경우 축농증이나 비염 등 후각기관에 질환을 앓은 경험이 있거나 냄새를 못 맡는 취맹은 지원할 수 없다. 100여종의 천연향과 수천여종의 향을 결합시킬 수 있는 상상력도 필수다. 조향사들은 제품개발팀이나 마케팅팀에서 원하는 향의 콘셉트를 이해하고 제시하기 위한 표현력도 필요하기 때문에 입사지원 때 향을 구분하는 '트라이앵글 테스트(삼각시험법)'를 받기도 한다. 최연순 아모레퍼시픽 향료연구원은 "(특정한 향을) 같은 농도라도 더 진하게 맡을 수 있으면 (조향사로서) 유리하다"며 "신체감각은 몸이 건강할 때 충분히 발휘될 수 있으므로 건강한 체력도 필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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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활건강에서는 지난 2006년 업계 유일하게 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센베리 퍼퓸하우스'를 설립해 15명의 조향사 가 새롭고 매력적인 향을 찾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에 커피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바리스타는 일반화됐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보다 특별한 직군으로 세분화되고 있다. CJ푸드빌의 커피전문점 투썸플레이스가 양성하는 '빠띠스타'는 새로운 직군의 바리스타로 부상하고 있다. 케이크 제조 판매인인 파티셰와 바리스타의 합성어로 한마디로 케이크와 커피를 모두 만들 줄 아는 전문가를 뜻한다.

프리미엄 디저트카페를 지향하는 투썸플레이스는 지난해부터 '빠띠스타' 직군을 만들어 교육부터 취업까지 연계하고 있다. 투썸플레이스 아카데미에서 5주 과정의 '빠띠스타' 과정을 수료하면 투썸플레이스 가맹점 소속으로 근무하게 된다. 현재 약 30개 매장에서 40여명이 일하고 있다. 과정은 생크림케이크ㆍ커피ㆍ디저트 만들기에 대한 이론과 실습 위주로 이뤄져 있다. 실업자 위주의 교육으로 교육비는 노동부 국비지원에 따라 전액 무료이며 유니폼과 훈련수당(20만원) 및 중식까지 제공한다.

체육 전공자로 진로를 고민하다가 '빠띠스타'를 접하게 됐다는 김경수씨는 "하루 평균 9시간 근무하면서 20~30개 케이크와 수백잔의 커피를 만든다"면서 "커피와 케이크가 가장 훌륭한 맛을 간직한 채 만났을 때 최고의 궁합을 이룬 맛을 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는 작업이 무한재미를 준다"고 전했다.

베이커리 업계에 '빠띠스타'가 있다면 주류업계에는 브루마스터가 있다. 브루마스터는 공정단계별로 담금ㆍ발효ㆍ숙성ㆍ여과ㆍ포장까지 모든 맥주 제조과정에 참여하며 완성된 맥주의 품질까지 관리한다. 다양한 수입맥주들이 소개되고 소비자의 입맛이 고급화되는 추세에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어느 때보다 브루마스터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현재 OB맥주에는 독일ㆍ미국 등 맥주 선진국에서 맥주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7명의 브루마스터가 일하고 있다. 보통 독일 뮌헨공대 대학원 과정이나 단기 코스로 3개월간 미국 시벨 맥주전문가 양성학원 코스를 밟는다.

2011년 3월 출시돼 지난해 말 판매량 3억병(330㎖ 기준)을 돌파하며 OB맥주의 히트 상품이 된 'OB골든라거'가 브루마스터의 덕을 본 사례로 꼽힌다. OB골든라거는 OB맥주의 베테랑 브루마스터들이 4년간 연구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1984년 OB맥주 양조팀에 입사해 30년간 맥주 맛을 만들어낸 브루마스터 정영식 소장은 지금껏 전세계 수천가지의 맥주를 맛봤고 블루걸ㆍ카프리ㆍOB골든라거 등 20여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그는 "맛을 잘 보는 사람이 음식도 맛있게 잘 만드는 것처럼 타고난 미각을 가진 사람이 유리하며 생물과학ㆍ농화학ㆍ화학공학ㆍ식품공학 전공자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텔업계의 티소믈리에ㆍ워터소믈리에도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직군이다. 이들은 와인소믈리에처럼 차맛ㆍ물맛을 감별하는 전문가다. 플라자호텔의 중식당 '도원'에서 티소믈리에로 재직 중인 김하연씨는 중국 노동부가 인증하는 전문 다예사 및 음차사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다. 김씨는 "차의 종류와 제조법ㆍ향미감별ㆍ시음법 등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고객들에게 제공할 차를 선정하는 작업부터 구매ㆍ서비스까지 총괄한다"고 말했다.

워터소믈리에는 좀 더 생경하다. 와인이나 차와 달리 물맛이 얼마나 다르기에 전문 감별사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하지만 유럽에는 이미 '워터웨이터'라는 전문직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물맛을 까다롭게 고른다. 지난해 한국소믈리에대회에서 워터소믈리에 부문 금상을 수상한 김도형 롯데호텔서울 지배인은 시중에 판매되는 수십가지 물의 특성을 공부해 물맛을 감별한 후 고객들에게 좋은 물을 추천한다. 그는 "호텔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외국인 고객들이 항상 물을 골라 마시는 걸 보고 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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