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김호원 특허청장

중기 R&D와 지재권 연계 강화로 표준특허 늘려야



국내 표준특허 미국의 1/10 불과…
R&D 초기부터 협력체계 만들어 연구성과 기술수출로 연결시켜야
특허괴물, 중기 공격 갈수록 늘어… 지재권 전담 인력 확보·양성 시급
특허심사 기간 10개월로 줄이고 위조품 근절위해 기획수사도 강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선진국과 후진국 간 지식재산(IP) 격차가 경쟁력을 좌우합니다. 'IP 디바이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계획입니다."


9일 서울 역삼동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취임 후 첫 단독 인터뷰를 가진 김호원(54ㆍ사진) 특허청장은 "대부분의 중소기업이나 개발도상국은 IP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앞선 것을 끌어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한 뒤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까지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강조한 것은 연구개발(R&D)과 지식재산권의 연계다. 대학이나 중소기업이 R&D 성과를 지식재산권으로 만들어 수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청장은 "R&D를 통해 고급기술을 이끄는 것은 선진국 수준에 근접했는데 아직 R&D와 지재권이 연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청장은 특허심사ㆍ심판ㆍ서비스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을 지향함과 동시에 IP 정책 마련에 대한 특허청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국정 운영 실무 경험을 토대로 특허소송 관할 집중, 산학연 공동연구 성과 배분 등 산업재산권 관련 주요 현안이 범국가적으로 논의되고 해결될 수 있도록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관련 부처와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표준특허로 기술수지 적자 없애야

우리나라의 기술무역수지 적자는 지난 2008년 32억달러에서 2010년 69억달러로 확대됐다. IP 분야의 질적 경쟁력이 높지 않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김 청장은 "세계시장을 선도할 원천ㆍ핵심ㆍ표준특허가 부족하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 우리나라의 특허 확보는 세계 4위 수준이지만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국제적 표준화기구에 신고된 표준특허는 2011년 301건으로 3.5%에 그치는 실정이다. 표준특허 확보 비중이 미국의 10분의1, 일본의 6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김 청장은 "표준특허는 휴대폰이나 인터넷같이 표준기술이 사용되는 제품을 만들 때 반드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특징을 지녀 많은 로열티를 창출할 수 있다"며 표준특허 확보에 대한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표준특허 보유건의 96% 이상을 삼성전자ㆍLG전자ㆍ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세 기관이 차지하고 있다"면서 "R&D 전담 체계에서 R&D부서-특허부서-표준담당부서 간 유기적인 협력체계로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김 청장은 상당수 기업들이 R&D 과정에서 특허를 비용요소로 여겨 권리 보호를 등한시하는 점을 우려했다. 특허 1건으로 모든 것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어렵게 개발한 기술을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R&D 초기 단계부터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도록 IPㆍR&D 연계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특허청의 IPㆍR&D 전략사업에 참여한 한 중소기업은 해외 출원 3건 등 총 6건의 독자기술에 대한 특허를 조기에 확보해 해외 수출시 특허분쟁 우려를 해소하고 제품 경쟁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특허괴물, 중소ㆍ중견기업 공격 늘어

무역분쟁이 반덤핑 제소에서 특허ㆍ상표 등 지재권 침해로 변화하면서 외국 기업과 특허관리전문회사(NPE)의 우리 기업에 대한 공격이 강해지고 있다. 우리 기업과 외국 기업의 소송 건수는 2006년 83건에서 2011년 159건으로 늘어났고 우리 기업과 NPE 간의 소송도 같은 기간 9건에서 73건으로 8.1배나 증가했다. 이제는 그 대상이 대기업에서 중견ㆍ중소기업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김 청장은 "대기업은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지식재산전문가로 구성된 전담부서를 설치해 지재권 분쟁에 대응하고 있지만 중소ㆍ중견기업은 핵심ㆍ원천기술과 특허 전문인력 부족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실제 특허청이 지난해 실시한 지식재산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지재권 전담인력 보유율은 15.5%에 불과하다.

이에 그는 "중견기업에도 지식재산 담당인원(CIPO)을 두도록 권장하고 있다"면서 "지식재산을 관리하고 지재권 분쟁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할 필요성도 높다"며 중견ㆍ중소기업의 변화를 강조했다. 이어 그는 "맞춤형 인재양성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직무발명보상제도를 확산하는 작업에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허심사 빠르고 품질 더 좋게


특허청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특허심사 서비스다. 그 핵심은 심사 기간과 품질. 우리나라의 특허심사 처리기간은 지난해 기준으로 16.8개월로 미국의 28개월, 일본의 25개월보다 1년 정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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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 청장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심사 처리기간을 2개월 더 앞당기고 오는 2015년까지 10개월 수준으로 단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특허협력조약(PCT) 국제조사를 의뢰하는 건수가 2007년 2,853건에서 2011년 1만5,716건으로 급증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특허심사 품질 수준도 국제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PCT란 여러 나라에 동시에 특허 출원을 하는 것은 금전적ㆍ시간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PCT 국제출원을 하면 모든 회원국에 동시에 출원한 것과 같은 효과를 우선 받는 것을 뜻한다.

특허청은 심사 서비스 제고를 위해 심사인력 확충, 전산시스템 고도화, 심사관의 전문성 향상 등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해나가고 있다. 김 청장은 "지난해 심사관 70명을 추가 채용하는 등 최근 10년간 435명을 증원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인력을 확충해나갈 방침"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그는 또 "PCT 국제조사를 위한 선행기술조사의 외부 전문기관 용역 비율을 지난해 49.6%에서 올해 89.8%로 대폭 확대함으로써 심사인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위조상품 뿌리 뽑는다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된 위조상품의 규모는 1조1,986억원. 블랙마켓 전문사이트인 하보스코프닷컴(havoscope.com)에 따르면 국내 위조상품시장 규모는 142억달러(약 17조원)로 세계에서 10번째로 크다.

이에 따라 특허청은 위조상품을 근원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 제조공장 등 대규모 공급ㆍ제조업자에 대한 기획수사를 한층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또 상표권 특별사법경찰대 수사인력에 대해 법무연수원ㆍ대검찰청의 위탁교육을 실시해 전문성 등 단속 역량도 제고해나갈 방침이다.

특허청은 2010년 상표권 특별사법경찰대를 출범한 후 324건을 형사입건하고 9만여점을 압수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부산에서 총 30여톤(시가 7억6,300만원) 규모의 신발 짝퉁 공장을 적발하기도 했다.

김 청장은 "대규모 짝퉁 운동화 제조공장을 비밀리에 별도로 차려놓고 개인쇼핑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판매자에게 유통시킨 사건에서 보듯 그 수법이 날로 대형화ㆍ지능화되고 있다"면서 "위조상품인 것을 알고도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이 근절되지 않는 주원인"이라고 소비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행정의 프로서 지식재산 대중화 세일즈맨 변신

金 특허청장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마찬가지로 정부조직의 CEO도 움직이는 광고판이 돼야 합니다."

김호원 특허청장은 '지식재산 대중화'의 세일즈맨으로 불리기를 자청한다. 특허ㆍ디자인 등 지식재산이 21세기 국가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지만 아직 일부 전문가 또는 대기업의 영역에 머물러 있어 지식재산이 모든 국민의 일상에 보편화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지식재산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식재산 대중화 노력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ㆍ대학ㆍ지방자치단체 특강이나 현장방문 소통을 본격화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 청장은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 3만, 4만달러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식재산 업무가 변방에서 핵심 정책으로 올라서고 친지식재산 사회로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제4기 책임운영기관으로서의 특허청 정책 비전'도 마련하고 있다. 그는 특허청장 취임 전 국무총리실에서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으로 근무하며 지식재산기본법의 기틀을 만들었다.

김 청장은 사무관 시절부터 업무에 대한 열정이 강해 '워커홀릭'으로 불렸다. 그는 "강약, 중간 약이 아니라 여기저기 차출되면서 '강강강'으로 보냈다"고 떠올렸다. 이 때문에 붙은 별명이 '행정의 프로'다.

지난 5월 특허청장에 취임한 후 그는 보고 받는 안건과 관련해 수많은 제안과 주문사항을 직원에게 전달했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많은 토론과 지시를 하다 보니 취임 열흘 만에 목이 잠겨 병원을 찾아야 했을 정도다. 그는 보고서를 받으면 두고 가라고 지시하고 퇴근 이후나 주말에 조용히 혼자서 보고서와 관련된 자료를 읽는다.

특히 지난달 프랑스에서 열린 선진 5대 특허청(IP5) 청장회의에 참석해서는 짧은 시간에 많은 특허 현안을 꿰차고 있는 모습에 유럽특허청장이 'Incredible!(놀랍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스타일마저 딱딱한 것은 아니다.

구수하게 스며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느껴지듯 정이 많고 소탈하다. 실제 특허청 직원들도 업무 면에서는 지시하는 것도 많고 이행 여부를 꼼꼼히 따지지만 일 이외에 여러 면에서 세심하게 마음을 쓰는 보스라고 입을 모은다.

청사는 대전에 있고 일주일에 절반 이상은 서울로 나오다 보니 최대한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늘리려고 한다. 김 청장은 "노조위원장과 노조 간부, 여성 과장, 심판장, 심사관 등 그룹별로 식사 자리를 만들며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면서 "상사나 동료가 아니라 동반자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청장이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직원들과 사고를 공유하고 협조를 주고받는 동시에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약력

▦1958년 경남 밀양 ▦1977년 동래고 졸업 ▦1979년 행정고시 23회 ▦1981년 부산대 경제학과 졸업 ▦1983년 상공부 행정관리담당관실 ▦1999년 산업자원부 투자정책과장 ▦2002년 산업자원부 산업기술정책과장 ▦2005년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ㆍ산업정책국장 ▦2007년 산업자원부 미래생활산업본부장 ▦2008년 지식경제부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2009년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실장 ▦2010년 총리실 국정운영2실장 ▦2012년 특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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