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유통업계의 두 얼굴

요즘 농민들은 살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김치 파동’으로 배춧값은 올랐지만 지난해 배춧값 폭락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농가들은 올해 대형 할인점들이나 중간 도매상들과 한 평당 3,000~5,000원 수준으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시중에서 배추 한 포기가 2,000원 정도에 팔리는 점을 감안하면 농민들은 더욱 허탈해진다. 또한 올해부터 추곡수매제가 폐지되면서 쌀을 재배하는 농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다. 여기저기서 쌀값 하락을 부추기는 대형 할인점들이 야속하지만 이들이 농가의 쌀을 구입하지 않으면 판로가 막혀 더욱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도 마찬가지. ‘금추’가 돼버린 배추를 싼값에 사기 위해서는 이른 아침부터 배추 행사 매대에 줄을 서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실제 10일부터 배추 한 포기를 780원에 판매한 이마트의 한 매장에서는 문을 열기 전부터 수십명의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고작 700통만 준비된데다 1인당 5포기만 판매하기 때문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식구가 총동원된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1인당 5포기로는 김장을 담그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간 유통업자인 대형 할인점들은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다. 배추는 몇 달 전 계약재배와 밭떼기를 통해 이미 저렴한 가격에 확보했고 끝없이 추락하는 쌀값은 고맙기만 하다. 이에 따라 ‘업계 최저가’를 내세워 소비자들에게 생색을 내면서도 예년보다 훨씬 높은 이윤을 남기면서 배추를 팔 수 있게 됐다. 또한 일부 할인점은 슬그머니 ‘파격가 쌀 할인 판매’ 행사를 실시해 농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농민 스스로 입도선매 방식으로 배추를 팔아넘긴 것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보다 ‘로 리스크 로 리턴’을 선택한 명백한 경제 행위다. 또한 세걔무역기구(WTO) 체제 안에서 다양한 분야의 무역 이익을 위해 농산물의 관세를 낮추는 것도 세계 경제 흐름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심정적으로는 농민들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냉정한 경제논리에 따르면 이는 ‘정당한 거래’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이런 상황을 자사의 이익 추구에만 이용하는 할인점들의 행태다. 근시안적인 이익만능주의에 도취돼 ‘한 줌도 안되는’ 미끼상품으로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농민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이용해 더 큰 이윤을 남기려는 모습은 아쉽다.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면 장기적으로는 품질 좋은 상품이 생산되지 못할 것이고 얄팍한 유통 업계의 ‘술수’를 알아챈 소비자들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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