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벌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행 30대까지로 운영되는 대규모기업집단(재벌) 지정범위를 5~10대 이내로 현실화시켜 정책집중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이같은 주장은 5대 그룹의 자산규모가 30대 기업 전체의 62% 이상을 차지하는 등 재벌간 외형격차가 커짐에 따라 1위부터 30위까지의 재벌을 동일한 규제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의미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규모에 상관없이 30대 범위 내에서 일괄 시행되는 경제력집중억제 시책이 국내기업들에 대한 역차별 요인으로 작용, 오히려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23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4월 선정한 30대 기업의 자산총액은 모두 435조3,180억원으로 이 가운데 현대·삼성·대우·LG·SK 등 이른바 빅5 그룹의 자산규모가 273조900억원을 차지, 전체의 62.8%를 웃돌고 있다. 다시말해 6대부터 30대까지 나머지 25개 그룹을 모두 합쳐봐야 외형규모가 상위 5개 그룹에 못 미친다는 얘기다.
특히 기업규모 1위를 차지한 현대그룹은 자산총액이 74조원에 달하는 반면 30위인 새한그룹은 2조6,590억원에 그쳐 공정거래법상 동일한 규제를 받는 대규모 기업집단이면서도 외형면에서 27배 이상의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최낙균(崔樂均) 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이날 「21세기를 대비한 산업정책방향」 공청회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30대 기업집단 중 이미 절반 가량이 화의·법정관리·워크아웃 등으로 그룹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등 재벌간 외형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며 『재벌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오는 2000년부터 대기업집단 지정범위를 5대 그룹 이내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일(金泰日) 전경련 상무는 『대기업집단으로 선정될 경우 신규사업 진출이나 기업결합 때 각종 규제를 받게 된다』며 『선진국 대기업들이 상호합병 등을 통해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마당에 이같은 기업규제는 오히려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기업집단 지정업무를 맡은 공정거래위원회는 『채무보증관리 등을 통해 대기업의 재무구조 건전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집단 지정 대상을 30대에서 더 확대해야 한다』며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이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