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 & Story] 박진선 샘표 대표



발효 명가 샘표 “전통음식문화도 살리고, 세계인의 입맛도 사로잡겠다” 간장은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으로 구현된 전통 발효식품이다. 샘표는 이런 간장을 올해로 65년째 만들어왔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훌쩍 넘겨서까지 발효식품에 매진해왔다는 점 자체가 뚝심과 사명감 없이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19일 서울 충무로 본사에서 만난 박진선(61ㆍ사진) 샘표 대표는 전통음식 문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인터뷰 중간중간 식품업계의 대표적 3세 경영인으로서 전통음식 문화를 제대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회사를 내실 있게 다져야 한다는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윗대에서부터 이어진 그의 기업관과 경영철학은 우직한 소걸음을 닮은 듯했다. 냉정히 보면 비즈니스 세계와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인화ㆍ신용ㆍ봉사’가 사훈(社訓)일 정도로 샘표의 수장은 발효식품의 특성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그는 “기업은 돈 버는 조직이 아니다”라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가 기업인 만큼 직원들의 행복이 중요하고 기업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로부터 간장ㆍ된장 등 전통음식 문화와 샘표의 비전,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사모펀드와의 경영권 분쟁 등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우현석 생활산업부 부장 hnskwoo@sed.co.kr 식품기업에 사업다각화는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여겨진다. 업체 간에 분야를 불문하고 전방위 경쟁이 벌어지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두루 깔아놓아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팽배한 게 사실이다. 샘표도 그런 관점에서 브랜드 다각화를 꾸준히 이뤄왔다. 간장이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가운데 샘표는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순작(유기농 차 브랜드) ▦폰타나(소스ㆍ잼 등 서양식 프리미엄 브랜드) ▦질러(육포 등 영양간식 브랜드) ▦세이버리치(천연조미소재 브랜드) ▦펩리치(기능성 전문 소재 브랜드) ▦백년동안(흑초 음료 브랜드) 등을 선보여왔다. 연평균 한개꼴로 브랜드를 론칭해 일견 백화점식 브랜드 확장 같지만 여기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모든 브랜드의 근간에 발효기술이 자리한다는 점이다. 박 대표도 이 점을 강조했다. “우리는 발효 전문기업입니다. 사업다각화를 한다고 해서 무작정 연관도 없는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몰라서 그렇지 발효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신사업은 무궁무진하거든요.” 실제로 한국3M의 고무장갑에도 샘표의 발효기술이 적용된다. 고무장갑은 손을 보호하는 기능이 탁월한데 이는 물고기 꼬리비늘에서 추출된 콜라겐으로 코팅됐기 때문이다. 이 콜라겐 추출이 바로 미생물을 활용한 샘표의 핵심 기술이다. 고무장갑뿐 아니라 요거트 제품에도 샘표가 개발한 콜라겐이 들어가 있다. 한마디로 간장ㆍ된장 등에서 내공을 키운 샘표의 발효기술이 향후 노다지 사업으로 분류되는 신소재 사업에서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박 대표가 요즘 막걸리 사업을 유심히 보고 있다. “막걸리도 발효기술을 이용해 진출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막걸리를 단지 술로만 생각했다면 막걸리 사업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음식문화로 바라봤기에 우리 기술로 만들 생각을 하는 겁니다. 현재 연구개발(R&D) 작업을 하고 있는데 다른 제품에 비해 몸에 좋고 맛도 뛰어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통 음식문화 계승, 발전’이라는 과업은 발효명가 샘표의 어깨에 올려진 짐과도 같다. 창립 60주년이었던 2006년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된장을 먹이기 위해 실시해온 ‘아이장 캠페인’도 같은 맥락에서 운영되고 있다. 박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된장을 먹지 않으면 성인이 돼서도 된장을 계속 먹지 않게 되고 결국 음식문화의 맥이 끊기게 된다”며 “더구나 된장은 몸에도 좋은 음식인데 캠페인을 해서라도 먹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통음식으로서 발효식품에 대한 애착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식품기업이 하는 것은 단순히 보면 식품을 파는 일이지만 식품은 문화의 한 축이라 식품기업은 문화기업이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사업도 그런 마인드로 접근하고 있어요. 간장시장에서 샘표의 시장 점유율은 50%로 최고지만 영세기업들도 잘돼야 합니다. 대기업들은 손을 많이 타는 제품을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소기업이 명품을 만들 가능성이 더 높아요. 소기업에서 명품이 나오면 대량생산하는 대기업 제품의 질도 더 좋아질 겁니다. 작은 기업이 명품을 만들 수 있다면 그런 기업을 지원할 의향도 있습니다.” 올 한해 해외시장 공략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샘표는 현재 미국ㆍ중국ㆍ중동ㆍ러시아 등 전세계 68개국에 간장을 비롯한 전통 장류를 수출하는데 수출규모는 150억원 수준이다. 올해에는 2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중국시장은 터를 닦는 단계다. 아직은 마케팅에 치중하면서 브랜드 알리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유럽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운다는 복안을 가졌다. “지난해부터 유럽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어요. 특히 현지 셰프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들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각종 장류 등을 사용해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잘만 되면 유럽시장에서 샘표가 가장 앞서가는 기업이 될 겁니다.” 샘표는 최근 입점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세계 최대 온라인쇼핑몰 ‘아마존닷컴’에 진출했다. 그만큼 제품의 우수성이 입증된 셈이다. 샘표 제품은 직매입 제품으로 선정돼 아마존닷컴이 판매와 배송을 직접 담당하게 된다. 간장과 된장ㆍ고추장을 비롯해 불고기소스ㆍ갈비소스ㆍ잔치국수 등 40여개 품목의 판매를 시작한 샘표는 올 상반기 중 입점품목을 7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샘표의 브랜드 가운데 최근에 가장 뜨고 있는 것은 바로 지009년에 나온 현미로 만든 흑초음료 브랜드 ‘백년동안’. 지난해 매출 200억원을 올리며 식초음료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백년동안은 올해 최대 600억원의 매출을 전망할 정도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샘표는 백년동안의 판매호조 등에 힘입어 올해 매출목표를 전년 대비 20%넘게 늘어난 2,400억원으로 잡고 있다. 샘표는 올 초 우리투자증권이 만든 사모투자펀드(마르스 제1호 사모투자전문회사)와의 경영권 분쟁으로도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박 대표는 “사모펀드가 샘표를 흠집 내려고 5년째 경영권 분쟁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며 “이젠 사모펀드 쪽에서 구사할 카드도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2006년 9월 샘표의 지분 24.1%를 사들이며 2대 주주에 등극한 마르스 제1호는 현재 32.98%의 샘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박 대표 외 사주 일가가 가진 주식을 불과 0.68% 밑도는 수치다. 그러나 마르스 측은 이후 우호지분 획득에 실패, 주총 대결에서 4전4패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마르스 측은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공개매수 등을 시도했지만 소액주주들의 지지도 얻지 못한 채 5년째 투자액이 묶여 있다. 박 대표는 “내년 2월이 펀드 만기인데 이제 펀드 만기연장도 안 되는 상황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는 절대 펀드가 가진 지분을 비싼 가격에 사줄 의향이 없다”고 거듭 확인했다. 박 대표는 직원들의 행복을 가장 중시한다. 입에 발린 말처럼 들렸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됐다. “가끔 직원들이 ‘돈 많이 주고 놀게 해주면 행복하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직원들의 행복이란 그런 게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직장이란 일하는 곳입니다. 일을 잘해내는 구조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고 제가 말하는 직원들의 행복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구현된 행복을 말합니다” 박 대표는 올해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탄탄한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시스템으로 탄탄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매출규모에 비해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sedc.co.kr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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