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오는 9월 양적완화 축소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면서 '글로벌 자금 대이동(그레이트 로테이션)' 수위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연준이 지난 5월 말 '출구전략 로드맵'을 공개한 이래 '패닉' 상태를 경험한 바 있다. 이후 벤 버냉키 연준 의장 등의 양적완화 축소시점을 늦추겠다는 구두 개입 등에 힘입어 장기금리 인상 기조가 한풀 꺾이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은 '속도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안정일 뿐 출구전략이 실행된다면 다시 한번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칠 것이라는 우려와 더불어 글로벌 로테이션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신흥국으로부터의 자금이탈 및 주식자금 유입 추세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 국채와 엔화, 아시아 하이일드채권이 각광을 받는 등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달러화와 기타 안전통화 등은 당분간 투자자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질 자산으로 분류됐다. 연준의 출구전략에 연계돼 나타나는 글로벌 자금흐름을 정리한다.
◇주식시장 유입, 장기채 매입=마켓워치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주식형펀드에는 403억달러가 유입돼 두 달 연속 역대 최고 유입 기록을 경신했다. 반면 채권시장에서는 6월 역대 최대인 691억달러가 빠져나간 데 이어 7월에도 211억달러의 자금이 유출됐다. 마켓워치는 "연준의 구두개입에 힘입어 채권 순유입 국면이 급격한 장기금리 인상을 피하고 21개월 만에 마무리된 셈"이라며 "신흥국에서 빠져나온 자금의 상당액은 아직 현금 상태이지만 주식시장 유입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채권시장의 점진적 안정기조가 확산되면서 단기채권에만 관심을 보였던 투자자금의 일부가 장기채권으로 흘러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8일 "지난달 보험업계 등에서 채권시장 안정화에 힘입어 신규 장기채 매수를 재개했다"고 보도했다.
◇한풀 꺾인 달러 강세=반면 출구전략 로드맵이 공개된 뒤 급격한 자금유입을 경험했던 달러화는 갈수록 투자자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전일 엔ㆍ달러 환율은 96.98엔을 기록하며 달러화 가치를 약 1개월반 만에 최저치로 끌어내렸다. 달러화는 대표적인 '투자피난처'로 위기 때마다 각광을 받아왔지만 일본과 유럽의 경기가 살아나고 지난 위기국면에서 별다른 방어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나 홀로 강세' 국면을 벗어나고 있다.
네일 멜러 BNY멜론 애널리스트는 "단기금리 인상 등 본격적인 출구전략이 실행되면 달러강세가 나타날 수 있다"며 "양적완화 축소 여부가 이미 시장에 반영된 만큼 좀 더 분명한 회복기조가 나타날 때까지 횡보세를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일본 씨티은행의 다카시마 오사무 투자전략가도 엔ㆍ달러 환율이 88엔까지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인기 떨어진 스위스프랑 등 기타 안전자산=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스위스프랑화와 독일국채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있다. 스위스프랑은 5월 초 유로당 1.2214프랑에 거래됐지만 미국의 출구전략 관련 첫 언급이 나온 5월22일에는 가치가 월초 대비 2.9%나 떨어진 유로당 1.2579프랑에 장을 마쳤다. 현재는 유로당 1.23프랑에 거래되고 있다. 독일 10년물 국채금리 역시 5월 초 1.16%였으나 6월 1.81%까지 치솟아(국채가격 하락) 약 1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현재도 1.7%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는 미국 경기가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유럽 또한 살아날 조짐을 나타내자 자금이 미국ㆍ유럽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다우지수는 연초 대비 18% 급등했고 범유럽지수인 STX600지수 또한 8.6%나 올랐다. 소시에테제네랄은 "프랑 가치가 내년 중반까지 현재보다 10%가량 더 떨어질 것"이라고 6일 보고서에서 분석했다. 7일 텔레그래프도 다수의 전문가를 인용해 투자자들 사이에서 1%대의 낮은 이자를 주는 독일국채를 꺼리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국채 다시 보기=반면 일본국채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새롭게 받고 있다. 7일 아시아시장에서 10년 만기 일본국채 수익률은 0.752%를 기록해 6월4일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엔화가치 급등이 일본 증시를 끌어내리면서 '안전자산 매입세'가 일본국채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채 수익률이 상승 기조를 보이는 점도 '자산피난처'로서의 일본국채 가치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일본은행(BOJ)이 단기국채 매입에 나서면서 국채 품귀현상이 촉발되고 있다"며 "시중 매수세가 장기채로 몰리고 있어 국채 인기가 지속될 가능성을 더해준다"고 평했다.
◇아시아 부실채 새 투자처 부상=글로벌 헤지펀드들은 아시아 부실채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헤지펀드들의 아시아 부실채 매입동향을 보여주는 유레카헤지 아시아부실채헤지펀드지수는 3월 433.8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6월 현재도 424.93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 기업들은 2008년부터 무분별하게 회사채를 발행해 부실채가 늘어났고 투자자들이 떠나 가격은 하락했다. 하지만 헤지펀드들은 이들 회사가 생각보다 부도 날 확률이 작아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RBS의 전 직원으로 현재 아시아 부실채 투자에 집중된 헤지펀드 발족을 추진하고 있는 조프로이 왈리어는 "사람들이 아시아를 떠나고 있어 우리는 높은 투자수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08년 이후 아시아 정부는 막대한 돈을 뿌려 기업들을 살렸지만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룽성중공업 구제를 거절하는 등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