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녹스(유사휘발유). 20리터 2만7,000원. 정품ㆍ정량 판매.’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사는 회사원 김모(34)씨는 최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자신의 자동차에 꽂혀 있는 유사휘발유 판촉물을 발견했다. 김씨는 예전 같으면 엔진이 손상될지 모른다는 찜찜한 생각에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만 연식이 5년 정도 된 중고차이다 보니 ‘망가져봤자 얼마나 망가지겠냐’는 생각에 당장 1만3,000원을 아낄 수 있는 유사휘발유 20리터를 넣었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김씨처럼 차량손상 위험을 감수하면서 값싼 유사휘발유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그동안 도로변 후미진 곳을 찾아 불법으로 판매해온 유사휘발유 업자들이 고유가 시대에 편승해 주택가ㆍ아파트단지 내로 판매망을 침투시키고 있다. 특히 출퇴근용 유류비 부담이 큰 경기도 신도시 지역과 상대적으로 단속의 손길이 느슨한 지방 소도시에서는 유사휘발유 판매 점조직이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시너ㆍ솔벤트 등 정유공정 부산물을 적당히 혼합(블렌딩)해 만드는 유사휘발유는 제조원가는 휘발유보다 비싸지만 세금이 적게 붙어 유통가격은 훨씬 싸다. 소비가 많아지면 가격도 오르기 마련. 지난 3월 20리터당 2만2,000원에 거래되던 유사휘발유 값은 최근 2만7,000원으로 뛰었다. 한 유사휘발유 판매자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우리가 공급 받는 가격도 한 달에 1,000~2,000원씩 올랐다”면서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지난번 화물연대가 파업할 때 공급량이 달려 2만7,000원으로 오른 후 계속 같은 값에 판매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화물차 등 경유차에 등유를 넣는 사례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경유와 등유는 품질차이가 크지 않은 반면 세금 때문에 가격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름이면 당연히 줄어야 할 등유 판매량이 5월 이후 갑자기 늘어났다. 대한석유협회 자료에 따르면 경유 대용으로도 활용 가능한 보일러등유 판매량은 1월 약 56만4,000배럴, 2월 51만7,000배럴을 기록한 뒤 봄철인 4월 39만배럴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5월 들어 43만7,000배럴로 증가했다. 한 주유소 업주는 “화물차에 20리터 기름통을 여러 개 싣고 와 등유를 달라고 하는 소비자에게 ‘차량에 넣을지 모르니 안 팔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일부 지역에서는 등유 주유기를 화물차에 직접 삽입해 대놓고 파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고유가 때문에 나타난 풍속도라지만 정유사들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GS칼텍스의 한 관계자는 “불법 자동차 연료에 대한 사용자 처벌 규정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불법 유류유통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안다”면서 “앞으로 주유소가 여러 회사 제품을 혼유해 판매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