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사드, '전략적 모호성' 상실의 댓가

안보냐 경제냐 선택 강요 당해… 사드 일방적 공론화 국익 저해

전략적 모호성 유지해 왔으나 리퍼트 피습 이후 분위기 급변

광해군의 좌절, 반복될 가능성… 독립변수 유지 시발점 삼아야


마침내 올 게 왔다. 안보와 경제의 충돌. 주한미군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시스템(THAAD)을 배치하려는 미국과 이에 반대하는 중국 사이의 이해 충돌에 한국이 낀 형국이다. 미·중국 대립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하는 시기가 빨라도 너무 빨리 왔다. 문제는 한국 스스로 앞당긴 측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전략적 모호성 아래 실질적인 자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손으로 버린 탓이다.

미국과 중국의 정책 의지는 여느 때보다 강해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 초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며 한국을 압박해 들어왔다. 명분도 충분하다. 북한의 핵과 각종 탄도미사일로부터 한반도를 방어하려면 현단계에서는 사드만한 무기체계도 없다. 다만 미국의 사드 배치가 목적 그 자체인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과 미사일방어망(MD)을 구축하는 전단계로 사드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 지역 집단안보 ‘구조’를 위한 수순인 셈이다.

중국의 입장은 더 강경하다. 전략적 균형 차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중국의 논리를 파악하려면 미국과 소련의 1972년 ABM(요격 미사일) 협정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협정의 요지는 발사기지(두 곳)와 배치수량(200기) 제한. 당시 미국(1,800여기)과 소련(2,600여기)이 보유한 대륙간탄도탄(ICBM)과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을 방어하려면 요격미사일이 적어도 2,000기 이상 배치돼야 했지만 수량을 줄인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 무서워 선제공격하지 못한다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유지하되 반격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수도권만큼은 보호하자는 취지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한쪽만 ‘칼과 방패’를 갖춰 결과적으로 전략적 균형이 무너진다는 게 중국의 걱정이다. 중국은 비슷한 성능의 무기를 개발해 쿠바나 멕시코에 배치하는 경우 미국이 용인할 수 있는지를 반문한다. 중국을 의식한 미국이 사드 체계의 핵심으로 중국 전역에 대한 감시가 가능한 X밴드 레이더의 탐지 각도를 조정해 북한의 위협에만 대응하겠다는 양보안도 통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미·중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난감하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 동맹. 혈맹으로 맺어져 막대한 원조를 받았을 뿐 아니라 안보 의존도 역시 절대적이다. 경제에 있어서도 미국은 은인이었으나 그 지위를 이제는 중국이 물려 받았다. 제 1의 교역국인 중국과 홍콩에 대한 수출은 미국과 일본, EU를 합친 물량과 맞먹는다. 대중 흑자 규모만 우리나라 전체 무역수지 흑자 474억 달러보다 많은 538억 달러. 홍콩까지 합치면 779억 달러에 이른다.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적절한 대응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온 덕분이다. 그러나 갑작스레 분위기가 바뀌었다. 새누리당의 핵심 당직자가 이 문제를 공식 거론한 뒤 논란이 증폭되고 중국의 내정 간섭적인 발언이 나온 뒤에 감정까지 섞여 한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 다양한 국내 여론을 외교협상 카드로 활용해 국익을 도모할 수 있는 여지가 작아졌다.

우려되는 대목은 얼마나 더 잃어야 할 것이냐는 점이다. 당장 미국에 대한 발언권이 약해졌다. 과거사를 묻고 미래로 나가야 하는데 한국과 중국 때문에 그렇지 못하다, 정치인들이 ‘값싼 박수’를 이용해 민족감정을 이용한다는 요지의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 발언으로 한국인들의 분노가 들끓자 진땀 흘리며 해명하던 미국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같이 갈 수 있을까. 국내 개발 중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시스템(KAMD)의 무산 위기는 감내 가능한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이후 일방적으로 흐르는 사드 논란의 방향이 국익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걱정도 앞선다. 명나라와 신흥 후금 사이에서의 실리외교 때문에 광해군이 임금의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망국까지 조선은 독립변수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선린관계를 유지하며 국산무기체계를 개발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는 전략적 모호성의 상실이 역사의 반복을 부를지 두렵다. 민족사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세대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