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황금 주파수'로 불리는 700㎒ 대역 주파수를 방송사에 공짜로 나눠주기로 사실상 결정했다. 주파수 경매를 통해 판매할 경우 최대 3조 원에 육박하는 국가 수입 중 절반가량을 포기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이 국가의 재정이나 민간투자 확대, 공익성 등의 측면보다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표의 논리에 좌우됐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미래창조과학부는 6일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주파수정책소위원회에서 700㎒ 주파수 대역을 KBS1·KBS2·MBC·SBS에 EBS를 포함한 지상파 5개 채널에 분배하겠다고 밝혔다. EBS에 DMB대역을 제공하겠다던 기존 안에서 한발 더 나아가 700㎒ 대역을 나눠주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4+1안'을 통해 700㎒ 대역 주파수중 4개 채널(6㎒씩 총 24㎒)을 지상파 4곳에 UHD 방송용으로 배분하고, EBS는 미사용 중인 DMB 주파수 대역 채널(6㎒)을 배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방위 주파수정책소위 의원들이 "EBS에도 DMB 대역이 아닌 지상파와 동일한 주파수를 배정해야 한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자, 미래부와 방통위가 EBS에게도 700MHz 대역에서 UHD 방송 채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수정안을 제시했다.
이로써 총 108㎒ 폭의 700㎒ 주파수는 이동통신용으로 40㎒, 지상파와 EBS 등 UHD 방송용으로 30㎒, 통합공공(재난망) 20㎒, 보호대역 18㎒ 등으로 분배가 이뤄지게 됐다. 미래부는 이달 내에 주파수 분배 고시안을 마련해 국무조정실 주파수심의위원회를 거쳐 분배고시를 개정할 예정이다. 이어 하반기 내에 지상파의 UHD 방송 도입 등 기본정책안과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계획 수립 및 경매를 실시할 예정이다.
학계와 전문가들, 이동통신업계에서는 주파수 사용에 대해 국회가 내년 총선을 의식해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700㎒ 대역을 통신용도로 할당하고 있는 추세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가령 일본은 지난 2012년 6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700㎒ 대역을 통신용도로 NTT도코모와, KDDI, E-엑세스 등에 할당했다. 미국도 AT&T와 버라이즌사에 통신용도로 할당했고, 독일도 최근 700㎒ 대역을 통신용으로 경매해 1조2,000억원의 주파수 할당대금을 받았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주파수를 경매하면 시장 상황에 따라 최대 3조원 가량 주파수 판매대금을 받을 수 있고, 민간 투자도 활성화되고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통신의 품질도 높아져 공익성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이를 포기하고 방송에 공짜로 배정한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익과 공익을 포기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박덕규 목원대 교수는 "국제적으로 700㎒ 대역을 모두 통신용으로 사용하자는 동의가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방송용으로 할당하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라며 "한국도 공동 연구반을 통해 경제성 부문은 통신이 우수하고, 기술과 공공성 부문은 통신과 방송 모두 타당하는 결론을 내린 상황에서 국회가 나서서 방송에 몰아준 것은 필요 이상의 간섭"이라고 지적했다. 구경헌 한국전자파학회장도 "시대적, 기술적 변화 등을 모두 고려할 때 700㎒ 대역은 통신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맞고,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며 "주파수 분배가 잘못되면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700㎒ 대역은 지상파 방송사가 사용했다가 2012년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고 디지털로 전환된 698~806㎒ 대역의 주파수다. 저주파 대역이라 기지국이나 안테나 수가 적어도 전파 전달이 용이해 '황금주파수'로 불린다. 통신사에는 경매로 매각할 경우 할당 대가와 전파 사용료까지 얻을 수 있지만, 지상파에 배정하면 아무런 수익이 없다.
미래부 측은 "국회가 동의할 경우 이달 중 분배고시안을 마무리하고 이른 시일 내에 주파수심의를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부의 한 관계자는 "이동통신용 주파수를 각 이동통신 사업자에게 나눠주는 주파수 할당(주파수 경매)은 올해 하반기나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하려고 한다"며 "그러면 LTE용 주파수 수요를 소화하는 데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