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문화재로 탈바꿈한 '탁류의 역사'

■ 군산 근대 문화유적 탐방<br>일제가 지은 세관·은행·가옥 등<br> 문화유산 지정 '슬픈 역사' 간직<br>군도의 중심 선유도 절경 자랑

동국사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지은 사찰 500여곳 중 유일하게 건물이 그대로 남아 사찰로 이용되고 있는 곳으로 해방 후 일본인이 기도하던 불상에 절을 할 수는 없다며 김제 금산사 대장전에서 불상을 모셔왔다. 단청이 없고 지붕 경사가 급하며 일본 밀교의 영향으로 12지신상 등을 모셔놓은 것이 특징이다.

화폐박물관으로 새단장할 구 조선은행.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과 군산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1920년대 에 지어진 해망굴.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 중 한 부분이다. 맑던 물도 군산에 이르면 탁류로 변한다는 암시적인 표현을 통해 일제 수탈의 역사가 서린 군산을 그린 소설이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역시 군산을 소설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두 소설에서는 나라도 구제할 수 없는 굶주림 속에 일본인 지주의 땅에서 소작을 하고 일본으로 반출되는 미곡을 운반하며 삶을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들의 모습이 가감없이 그려진다. 전북 최북단 도시인 군산은 실제로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본인이 일본인을 위해 지은 구 세관, 은행, 일본식 가옥 등의 건물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군산시청은 이들 소설의 배경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코스로 아리랑 코스(백년광장-구 조선은행-부잔교-구 장기18은행-구 세관-월명동 일대-동국사-월명산-수시탑-해망굴)와 채만식 코스(백년광장-부잔교-구 조선은행-미두장 기념비-빈해원-동령고개-국도극장-콩나물고개-동국사-월명동 일대-구 세관-구 장기18은행)를 지정해 관광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슬픈 역사의 조각들이 문화재로 탈바꿈해 관광객을 맞고 있으니 새삼 역사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수탈과 저항의 역사 간직한 땅 1899년 5월 조그만 포구였던 군산항이 부산, 원산, 제물포, 경흥, 목포, 진남포에 이어 조선에서 일곱번째로 개항을 했다. 개항 당시 500명이 채 안됐던 군산 인구는 8,000여명의 일본인들이 건너오고 간척지나 얻어볼 요량으로 소작에 나선 조선인들까지 가세해 북적댔다. 하지만 당시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고 반출 미곡량 역시 전국 최대인 항구였지만 군산의 조선인들은 비료로나 쓰는 말린 콩껍질죽을 끓여먹으며 삶을 이어가야 했다. 개항과 동시에 지금은 해망로라고 불리는 당시 본정통에는 미두장(쌀을 선물로 거래하는 일종의 투기장)과 군산내항을 중심으로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장기18은행 등 10여개 은행들이 들어섰다. 지금은 불에 그슬린 유흥업소 간판이 걸려있는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해방 이후 한국은행, 한일은행 군산지점, 유흥시설로 세월의 수레바퀴를 돌고 돌았다. 일본인 건축가 나까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한 이 건물은 붉은 벽돌의 서양 고전주의 건축양식을 띠고 있지만 여러 번의 화재로 흉물스런 모습만 남아있다. 최근 군산시에서 매입해 박물관 건립을 추진중이다. 해망로 인근에 남은 근대문화유산 중 보존이 가장 잘 된 곳은 구 군산 세관(호남관세전시관) 건물이다. 90년대까지 실제 세관 건물로 사용됐으나 현재는 군산의 100년 역사를 알려주는 사진들과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해망로와 맞닿아있는 군산내항에는 당시 3,000톤급 기선을 6척이나 댈 수 있었던 부잔교(뜬다리부두ㆍ수면의 높이에 따라 위아래로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한 다리 모양의 구조물)가 남아있다. 수백만섬의 쌀을 실어 나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현재는 녹슨 채로 운행이 중단됐다. 대학로를 따라 군산내항 반대편으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우측으로 월명동에 들어서게 된다. 일본 지주들이 모여 살던 월명동과 신흥동 일대에는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가옥과 관사, 절 등이 그대로 남아있어 드라마나 영화 촬영 장소로도 애용되고 있다. 개발 바람이 비껴가고 남은 근대 유산들이 마치 일제시대 드라마 세트장처럼 당시의 모습을 전해준다. 마을 일대 거리는 물론 일식 가옥 '구 히로쓰 가옥' 등이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 등에 등장했고 영화 '천년학', 드라마 '모래시계' '빙점' '야인시대' 등도 이 일대를 배경으로 촬영됐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군산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군산을 두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이제 새만금 간척 사업이 막바지에 이르러 올해말 새만금 도로가 개통되고 내년 초 매립작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개발작업에 나서게 되면서 군산 사람들은 "새만금에서 군산의 미래를 본다"고 말한다. 서울 여의도의 약 140배, 서울의 3분의 2 크기에 해당하는 간척지 중 71.3%가 군산시에 속하게 된다. 새만금 명품복합도시 개발 계획 중에는 관광레저단지 개발 계획이 포함돼 있어 군산시는 근대문화유산과 함께 관광코스를 연계할 방침이다. 특히 최근 군산시 일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하는 '지역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예술창작벨트 조성' 사업지로 선정돼 원형이 잘 보존된 건물들을 중심으로 탐방코스를 연결하는 사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첫 사업으로 구 세관 건물 바로 앞에 2011년 시립박물관이 문을 열고 소설 '탁류'와 '아리랑'에 등장하는 거리와 주택을 재현한 근대생활사 체험관 등도 설립될 예정이다. 장미동과 인접한 월명동ㆍ신흥동에는 근대 문화 테마 거리를 조성하고 옛 본정통 일대 조선은행 건물은 화폐 박물관으로, 장기18은행은 작가들의 작품 활동과 예술품을 전시하는 예술창작 공간으로 리모델링한다. 뜬다리 부두 주변에는 소규모 공연장을 세우고 1930년대풍 술집과 찻집을 꾸며 옛 분위기를 재현한다. 일제 시대 치욕의 역사가 우리 문화재가 될수 있는지를 둘러싼 근본적인 논란은 군산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군산시측은 개화기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 만들어진 근대 문화유산 역시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 우리의 역사라고 보고 2020년까지 옛 도심에 있는 근대 문화유산을 핵심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군산의 지명이 비롯된 고군산군도 군산이라는 지명은 고군산군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래 군산은 바다에 산이 무리지어 있다 해서 이름붙여진 고군산군도의 일대였으나 조선시대 수군 진영의 역할이 축소되고 내륙 중심의 국방전략이 세워지면서 지금의 군산으로 위치를 옮겼고 과거 군산은 옛 고(古)자를 붙여 고군산군도라고 부르게 됐다. 16개의 유인도와 47개 무인도 중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은 군도의 중심 섬인 선유도다. 2개의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망주봉을 배경으로 펼쳐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는 고즈넉한 풍경을 뒤로한 채 해수욕이나 낚시, 산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천연 해안사구 해수욕장인 이곳은 백사장이 곱고 수심이 깊지 않아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선유도 옆으로는 무녀도와 장자도가 있고 특히 장자도는 장자교로 연결돼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군산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선유도행 페리는 30분마다 출발하며 50분이면 도착한다. 군산시청 관광진흥과 (063)450-6110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