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鍾乾(편집국차장)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1년성적과 관련해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합격점은 무엇보다 작년 한해 동안의 무역수지 흑자 390억달러, 외환보유고 520억달러라는 수치로 표시된다.
여기에 기업을 비롯한 은행, 정부부문의 구조조정이 진전을 보인 것도 평점을 좋게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구조조정을 잘했다해도 무역적자가 계속됐다거나 외환상황이 위태위태하면 합격점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구조조정은 경제의 기초를 바로잡기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할 절차이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돼야 무역수지도 장기적으로 안정될수 있을 것이나, 단기적으로도 수출기반을 깨는 방식의 구조조정은 금물이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사상최대의 무역흑자를 올린 것은 한마디로 말해 백성들이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였다. 그것은 수입이 줄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수출도 수입도 줄었으나, 수입감소(35.5%)가 수출감소(2.8%) 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최악의 경제여건 속에서 수출감소가 그나마 소규모에 그친 것은 무엇보다 나라를 살리기위해서는 장롱속의 금반지라도 꺼내다 수출해야 한다는 국민적 위기감과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며, 엄청난 원화절하속에 재고수출을 한 덕을 본 측면도 있다.
어쩌면 IMF라는 미증유의 재난을 당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허리띠 조르기 뿐 이었을지도 모른다. 허리띠를 졸라매면 한해동안 400억달러 정도를 거뜬히 절약할 수 있는 나라임을 보여준 것 자체가 국가적 저력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달리보는 까닭도 그 점일 것이다.
외환위기는 일차적으로 무역적자와 그것의 누적인 외채로부터 온다. 우리나라는 90년대들어 97년까지 8년간 연속 무역적자를 보였고 그 누적액이 663억달러를 넘었다. 96년에는 한해에 206억달러의 적자를 냈다. 감당할수 없을 규모로 빚이 쌓여가는데 무역적자원인을 반도체가격하락, 기름값인상등에 핑계대고 손을 놓고 있다가 당한게 IMF다.
우리가 허리띠를 계속 졸라매야할 이유는 자명하다. 한국의 국제신용이 다소 회복됐다고하나 IMF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것이 없다. 올해중 2~5%의 성장을 예측하고 있으나 작년의 5~6%로 예상되는 마이너스 성장에 비추면 아직도 마이너스성장 상태이다.
근로자의 소득도 깎인채이고 더 오를 여지도 작아보인다.
1,500억달러에 이르는 외채도 전혀 줄지않고 있다. 외환보유고 500억달러라는 것도 상당부분은 차입금형태이다. 또 기업들의 자체해외차입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다.
보유외환이나 무역흑자액을 막바로 빚갚는데 쓸수도 없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IMF직전 외환보유액이 30억달러대까지 떨어져 환란의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던 악몽을 떨쳐버릴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나 기업은 달러를 섣불리 빚갚는데 썼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겁을 먹고 있는 상황이다.
4월부터는 외환거래가 자유화한다. 국내 증시 및 외환시장을 드나드는 외국의 투기자본은 우리경제가 약점을 보이면 97년말 처럼 마구 흔들어댈 것이다. 그렇잖아도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국제적인 투기자금에 원인이 있었다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 되고 있다.
작년보다 더 나빠지는 것도 있다. 실업이 자꾸 늘고 있다. 엔저(低)도 심화하고 있다. 선진국경제가 침체국면이고, 미국은 수퍼301조를 부활시키는등 보호주의를 강화할 움직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쁜 것은 섣부른 낙관주의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아직 정부는 샴페인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정부가 작년 업적을 과대선전하는 모습은 이미 IMF를 벗은양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이런 와중에서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내수를 살려야하고 내수진작을 위해서는 수입을 늘려야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선진국의 무역보복을 받지 않기위해 적당히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들린다. 공무원들의 「과천서부터 기는」 습성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쓰다. 수출을 하려면 수입은 불가결하지만 지금 우리 형편에선 필수적인 수입에 국한해야 한다.
그런 주장은 우리가 빚의 절반이라도 갚고난 다음에 해야 마땅하다. 2월중 수출이 16%나 감소한 것은 매우 우려할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