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서울 자치구 복지의 역설] 복지예산 절반 넘는 곳 많아… 하수정비·폐기물 처리도 못할 판

기반시설 예산 줄삭감 도로개설 엄두도 못내<br>빈익빈부익부 갈수록 심화 슬럼화·주민 이탈 현상에 '버려지는 자치구' 나올수도

지난 1월 초 서울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자 중구 남산1호 터널 인근에서 서울시 동부도로교통 소속 제설차량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치구마다 복지비용 부담 증가로 제설과 도로 정비 등 일반 예산이 대폭 줄어들면서 도시시설 유지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서울경제DB


서울시 전경

경기침체 장기화로 세수는 늘지 않고 복지예산은 해마다 급증하면서 서울시내 자치구들은 고육책으로 도로나 하수관거, 가로등 유지ㆍ보수 등 기반시설 유지관리 필수경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특히 제설예산까지 줄여 복지예산으로 쓰려는 자치구도 생겨나고 있어 최악의 경우 자치구 곳곳에서 도시기능 마비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5일 서울시 주요 자치구에 따르면 중구를 포함해 대부분의 자치구들이 내년 도로나 가로등 유지보수 등 기반시설 예산을 축소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세수를 늘릴 수단이 없는 자치구로서는 할당된 내년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예산을 확보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제설비용을 줄이는 자치구도 생겨났고 일부는 도심의 핵심시설이라 할 수 있는 도로 유지보수 예산을 깎은 곳도 있다.

중구는 제설예산을 올해보다 절반이나 깎았는데 폭설이 예년보다 잦으면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구청 관계자는 "내년 복지예산이 늘어나 사업부서에서 요구하는 예산을 모두 맞춰줄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구는 올해 제설예산을 깎았지만 나머지 자치구들은 대부분 기반시설 예산을 모조리 삭감했다. 구로구는 도로개설이나 인도확장 예산을 줄였다. 구로구의 내년 총 예산은 3,952억원인데 이 중 51.7%(2,043억원)가 복지예산이다. 복지예산은 올해보다 22.4%(374억원) 늘어난 반면, 비복지예산은 11.9%(103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러나 구로구는 이 수치도 착시라고 설명했다. 구로구청 관계자는 "그동안 복지비 지출급증에 따른 재원부족으로 장기간 미뤄온 청소년 문화시설 등 계속사업의 마무리를 위해 자산매각, 출연금 유치, 기금융자 등 재원을 120억원 따로 마련했다"며 "120억원을 제외하면 비복지예산은 올해보다 16억원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예산은 늘고 비복지예산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보니 자치구들은 복지 외에는 신경 쓸 수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강남 3구를 제외한 재정이 열악한 자치구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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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재정상황이 좋지 않은 도봉구는 복지사업이기는 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장애인종합복지관 건립과 같은 사업도 연기하는 상황이다. 같은 복지사업이라도 무상보육이나 기초연금과 같은 사업이 아니면 기초를 다질 복지사업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 도봉구는 구비 2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내년 장애인종합복지관 건립계획을 연기했다. 특별교부금 등 외부지원이 없이는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사업비 40억원이 드는 청소년을 위한 도서관 건립 역시 백지화됐다. 도봉구청 관계자는 "재정상황이 좋은 자치구는 복지예산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 수준이어서 그나마 일반사업을 할 여력이 있다"며 "하지만 복지예산이 50% 이상 차지하는 자치구는 엄두를 내지 못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예산 비율이 높다고 형편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복지비용은 30원으로 비슷한데 A자치구는 세수가 100원이고 B자치구는 60원이라면 기반시설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은 A자치구가 70원인 반면 B자치구는 30원에 불과해 갈수록 격차가 커지게 된다.

자치구들이 복지사업으로만 예산을 대부분 쓰다 보니 장기적으로 슬럼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자치구들의 일반예산 중 도시기반시설 예산 총액이 줄어드는 추세다. 전국시도시사협의회 관계자는 "자치구 기반시설 예산은 최근 5년간 총액이 줄어들고 있다"며 "전체 예산에서 비율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총액이 줄어드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로나 가로등 유지ㆍ보수 예산을 축소하면 당장 한두 해는 티가 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녹슨 시설이 방치돼 도시미관을 해칠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파산도시인 유바리시와 직접 비교하기는 무리지만 기반시설 투자 예산이 복지예산에 가려 지속적으로 축소되면 결국 주민들이 떠나게 되고 소위 '버려지는 자치구'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자치구가 파산 날 구조는 아니지만 기반시설 예산이 줄어들다 보면 결국에는 일본의 파산도시들처럼 '버려지는 자치구'가 생겨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도시 주요 거리들이 슬럼화되고 외국인 관광객들마저 발길을 돌리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이미 강남ㆍ북 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반시설 투자가 취약해지는 자치구들 간 반목도 생겨날 수 있다.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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