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황정민, 김정은, 문소리, 김하늘, 박용우, 신현준, 신하균.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봉 시점에는 차이가 있지만 2008 설 연휴 상영 대전에 나섰던 개봉작들의 주인공들이다. 영화 홍보의 최일선에 나선 주연 배우들이 각 언론과 방송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관객 몰이를 하는 사이 꽉 찬 연기력과 설득력있는 캐릭터, 그리고 적재적소의 폭소탄으로 입소문을 부르는 이들이 있다. 영화의 메인포스터에서도 각종 매체의 인터뷰에서도 쉽게 이들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관객의 뇌리에는 강하게 남아 구전 효과를 톡톡히 부르는 이들은 바로 조연 배우들. 설 연휴 개봉작에 출연한 배우 중 가장 눈길을 붙드는 이가 '원스어폰어타임'(감독 정용기, 제작 윈엔터테인먼트)의 성동일이다. 전지현·황정민 주연의 '수퍼맨이었던 사나이'(감독 정윤철, 제작 CJ엔터테인먼트)와 신하균·변희봉 주연의 '더 게임'(감독 윤인호, 제작 프라임엔터테인먼트)이라는 쟁쟁한 경쟁작들 틈바구니에서 떠들석한 이슈 없이 조용히 개봉했던 '원스어폰어타임'(감독 정용기, 제작 윈엔터테인먼트)은 "명절에는 코미디가 통한다"는 충무로의 공식을 입증이라도 하듯 개봉 2주차에 박빙의 차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지난 14일까지 누적관객 1백34만7358명을 달성했다. 물론 '원스어폰어타임'은 정용기 감독의 전작인 '가문의 위기'처럼 대놓고 코미디를 표방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할리우드 영화 '로맨싱 스톤'이나 '인디애나 존스'처럼 모험 활극에 가깝다. 하지만 성동일·조희봉 콤비의 배꼽 잡는 활약이 없었더라면 개봉 이전 예매율 3위~4위를 오가던 이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은 없었을 것이다. 재즈바 '미네르빠'의 사장이자 어설픈 독립군 비밀 요원으로 출연한 성동일은 극중 일본군 수장 암살미수신과 일장기 해프닝신에서 주방장 역의 조희봉과 함께 관객의 배꼽을 빼놓는다. 쉴새없이 총을 빼들었다가 양복 윗저고리로 다시 집어 넣으며 암살 미수에 그치는 장면과 일장기 밑에 숨겨 놓은 태극기와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이 연달아 발각되는 장면에서는 관객석에서 박수와 폭소가 동시에 터져 나올 정도다.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쉴 새없이 유발해낼 수 있는 그의 코믹 내공은 비단 하루 아침에 쌓인 게 아니다. 1999년 SBS 드라마 '은실이'에서 어수룩한 건달 양정팔 역으로 '빨간 양말'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주목 받은 그는 '파리의 연인', '그린로즈', '칼잡이 오수정' 등에서 감초 연기를 펼치며 시청자들과의 호흡을 익혀왔다. 최근에는 MBC 드라마 '뉴하트'에서 마음씨 따뜻한 의사 이승재 역을 맡아 연기 지평을 넓혀 가는 중이다. 지난 14일까지 관객 397만6천여명을 뛰어 넘으며 2008년 상반기 한국 영화 흥행의 선봉에 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 제작 MK픽쳐스). 주연 배우인 김정은, 문소리가 흥행의 포문을 열었다면 영화의 '웃음'과 '눈물'의 포인트를 책임지며 극을 풍성하게 만든 이는 바로 김지영을 비롯한 조연 배우들이다. 만년 후보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2004 아네테 올림픽에 출전하는 핸드볼 선수 송정란 역을 맡은 김지영은 이번 영화에서 '김지영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영화 관계자들과 관객들에게 고른 합격점을 받았다. 남편 역의 성지루와 닭살스러운 부부애를 과시하는가 하면 대표팀에 입단한 것을 자랑하느라 한밤중에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대기 바쁘고, 아줌마 선배들을 무시하는 후배들과 머리채를 휘어 잡는 싸움을 벌이다가도 역도 선수들과 밥상 다툼이 벌어지자 든든한 아줌마 선수 특유의 무대뽀 기질을 발위하며 후배들의 응원군이 되어 준다. 대표 선수에 발탁되기 위해 생리를 조절하는 후배들에게 불임의 아픔을 전하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도 그의 몫이었다. 흥행 대작은 아니지만 세상을 향한 따뜻한 진심이 돋보이는 영화 '대한이, 민국씨'(감독 최진원, 제작 퍼니필름)에서 박형사 역을 맡은 윤제문의 변신도 눈에 띈다. 영화 '비열한 거리'와 '열혈남아'에서 보는 이를 섬뜩하게 할 만큼 카리스마 넘치는 조폭으로 분했던 윤제문은 '대한이, 민국씨'에서 발달 장애를 앓는 대한이(최성국)와 민국이(공형진)를 살뜰하게 돌보는 박형사 역을 맡아 인간미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형사 일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대한이와 민국이를 폭행하는 것으로 풀었다가 이후 이들에게 고소 당한 뒤 두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려 스스로 폭행하는 장면은 웃음의 백미로 꼽힌다. 동생처럼 대하던 대한이와 민국이에게 "몇 살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모르쇠로 일관하면서도 두 사람이 세상을 향해 한 발씩 내딛을 수 있도록 숨은 수호천사 역할을 하는 박형사. 자칫 덤앤더머 류의 좌충우돌 코미디로 흐를 뻔한 영화를 발달장애아와 세상의 소통기로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데 주연배우 못지 않은 윤제문의 공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