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고졸 신데렐라는 신기루였나


그는 현대판 신데렐라였다. 동화 속 신데렐라가 계모 밑에서 자란 딸이라는 운명 때문에 구박을 받았다면 그는 얼어붙은 취업시장에서 '고졸'이라는 자신의 학력 탓에 제 빛을 발하기 어려워 힘겨워했다. 신데렐라의 남루한 옷이 마음씨 좋은 마법사를 만나 드레스로 바뀌었듯 그도 자신의 진가를 현대의 마법인 TV 공개채용 프로그램을 통해 확실히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당시 '숨겨진 보석'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방송출연을 계기로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 이노션에 당당히 입성했다.

스무살의 고졸 특채, 언론은 그의 취업을 두고 미국 아이비리그나 국내 명문대를 졸업해도 힘들다는 광고회사 취업을 오로지 가능성으로 극복한 사례로 꼽으며 환호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 정권에서 전략적으로 밀어붙였던 마이스터고 정책과 엮어 우리 사회가 고졸에게 관대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학이라도 나와야 뭐라도 하지 않겠니'라던 뭇 교사들의 진학지도가 무색할 만큼 팡파르는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제 신데렐라는 없다. 고졸 취업준비생들의 꿈과 희망을 현실로 만들었던 그는 이노션에서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한 2년 남짓이 지난 최근 사직서를 내고 서울생활을 접었다. 광고업계에서는 '비인간적인 처우나 혹독한 업무지시가 사직의 배경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만두겠다는 그와 말리는 회사 사이에서 잡음이 발생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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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을 둘러싼 사실이 어떻게 짜여 있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가 대학을 졸업했거나 그 이상의 학력인 상황에서 느꼈을 소외감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부분이다. 이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 역사상 최초로 고졸 크리에이터를 뽑은 이노션은 이번 일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고졸 출신 직원을 뽑았다며 언론에 인터뷰를 요청하던 당시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의 사직은 2014년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졸업장이 지닌 무게를 여실히 보여준다. 해외 유학파, 석사 학위자가 줄을 잇는다는 구직시장에 고졸까지 챙길 여유는 없다는 우리 사회의 냉정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광고업계에서 고졸 지원자를 정직원의 자리에 앉히려는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열린 취업을 향한 빈약한 사다리는 또 하나 걷어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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