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2월 13일] 한미 FTA의 정치·경제학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비준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찬성 측과 반대 측은 얻는 것과 잃는 것 관해 설익은 숫자를 들이대면서 분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6년 2월 공식 협상이 시작된 이후 5년 가깝게 공을 들인 노력이 또 다시 소모적인 논쟁으로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개 대외경제 협약은 경제적 논리에서 출발해 정치적 선택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한미 FTA를 두 나라 간 외교협상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막판에 우리 측의 정치외교적 판단이 한몫 했다는 느낌이다. 새 도약과 번영 위한 발판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하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의 정신을 구현하고 일본ㆍ중국 등에 앞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무역장벽을 허문다는 대외전략적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FTA가 가져다주는 자유무역의 이득은 너무나 자명하다. 전후 세계경제는 자유무역의 확대로 번영을 누려왔다. 1960~1970년대에 미국, 유럽공동체(EC)와 일본 간의 삼각무역은 산업발전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끼리의 산업 내 무역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기회를 제공했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개방과 협력을 통해 세계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 10대 통상대국에 올라서게 됐다.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국인 셈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ㆍ인도 등 거대 신흥시장국의 부상으로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거세지는 현 시점에서 한미 FTA는 두 나라가 시장통합과 산업협력을 통해 분업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자유무역의 이득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명백하지만 정치사회적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나라에서든지 FTA를 둘러싼 주장은 이해관계가 부풀려져 과장됨에도 불구하고 공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예가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최대 쟁점이 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다. 당시 로스 페로 대통령 후보는 협정으로 미국 고용인구의 4%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궤변을 주장하며 바람몰이를 한 결과 미국 역사상 제3당 후보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1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한미 FTA 추가 협상 결과에 대해서도 균형 잡힌 견해보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 해석이 많다. 자동차 부문에서의 관세 철폐 유예나 세이프가드 도입이 지나친 양보로 강조되지만 2007년 이후 미국 업체의 쇠퇴와 국내 업체의 약진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정작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는 이 정도라도 빨리 비준이 됐으면 하는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비해 의약품 특허·허가 연계의무 이행 시기의 연기로 제약업계는 한숨 돌렸지만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복제약에만 의존해온 국내업계의 영세한 풍토를 탓하기보다는 미국에 너무 많이 내줬다는 볼멘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마련이다. 자유무역협정의 득실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및 외교를 아우르는 총체적 시각이 필요하며 국내의 정치경제학적 역학관계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요구된다. 한미 FTA의 시행으로 해외 기업들이 한국에 관심과 신뢰를 가지고 무역과 투자를 늘리게 되면 경제적 이득 이외에 우리나라의 지정학적인 가치도 덩달아 커져 정치외교 면에서 보이지 않는 보험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협정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당사자들은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국가 위상이 높아지고 소비가 풍요로워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고 설득과 합의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논쟁 접고 활용 방안 찾아야 한미 FTA는 일부 조항으로 인해 자유무역의 본질에서 다소 벗어나는 협정으로 변질되기는 했지만 보다 큰 틀에서 보면 차선의 선택으로 크게 모자라지 않는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세계경제가 자칫 보호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는 시기에 협정의 좌절은 한미 두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무역의 적신호가 될 것이다. 이제 부질없는 찬반 논쟁을 접고 합의된 협정을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는 데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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